고시원 82일차
1. 퇴사 날 힘들어 술을 좀 마셨다. 새벽까지 유튜브를 보며 뒤척거렸고, 다음 날은 느긋하게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불가능이었다. 아침에 출근을 하는 건지 어디 나가는 건지 사람들의 씻는 소리와 알람 소리로 여덟 시만 되면 부산스러웠다. 한 명인지는 모르겠는데, 누군가는 아침부터 씻으며 한 3분간 크르륵칵칵 소리를 낸다.
지금까지는 운동하러 일곱 시쯤 나가거나, 씻고 여덟 시 반쯤 나갔기에 몰랐나 보다. 고시원에 살면 이건 좋다. 신영복 선생님이 감옥에서 타인의 숨은 여름에는 지옥 같고 겨울에는 따뜻하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의 살아가는 소리가 또 이렇게 아침 생활을 도와준다.
2. 혹시 가족과 함께 축구라도 보라고 월요일날 해고한 걸까? 부모님과 함께 축구라도 보러 본가에 가려다 참았다. 반차냈어, 밤새고 올라가지 뭐. 변명도 생각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걱정하실 거 같았다. 그래서 술을 마셨다.
3. 이렇게 생각하면 또 재밌다. 고시원에 간 후, 40일 정도만에 직장을 구했다. 작은 회사였고, 월급도 많이 줄었었다. 부모님은 작은 회사 들어갔겠지만 그래도 일을 하니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자식이 몸을 파는지 택시를 모는지 라이더를 하는지도 모르면서 일을 한다니 다행이란다. 호스트 한다고 농담이라도 해볼까 생각했다.
4. 대학교 일학년때까지는 네 꿈을 찾으라는 말을 하곤 하셨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반은 진심이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다.
5. 또 이렇게 생각하면 스스로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했던 무언가가 있나 돌아보게 된다. 데프트라는 프로게이머가 십 년 만에 우승했다고 기사가 나왔다. 자신은 오히려 부모가 반대해서 더 게임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반대를 이겨내는 실력과 의지가 있는 사람만이 게이머로서 성공한단다.
6. 최근 이삼일 간 인터뷰를 엄청 봤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무슨 생각으로 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7.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를 두 번 봤다. 요즘은 브런치도 새로운 걸 보는 것보다, 기존에 봤던 걸 또 보고 있다. 구독한 사람들은 정말 괜찮은 작가들이니 믿고 봐도 좋다.
8. 스스로의 글도 꽤 돌아보고 있는데 부모 이야기가 많다. 자식이 부모를 이겨내지 못하면 똑같이 산다는데 정말 그렇게 되어가는 거 같다. 부모와 자식 간의 미묘한 힘싸움은 크로노스, 우라노스, 제우스 때부터 있지 않았나. 부모의 영향은 받아도 영향력을 미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렵다.
한 예로 화가 나면 차분히 그 사람과 상황을 정리하고 거리를 둔다. 지금 애인과도 처음에 그렇게 몇 번 헤어졌다. 어머니는 그 모습이 네 아빠랑 똑같다고 한다.
배가 부르지만 음식 안 남기는 습관도 아버지를 닮았다. 아버지는 어려웠을 때의 영향인지, 상한 것도 자르면 괜찮다고 하며 드시고, 어렸을 때부터 형제나 어머니가 남긴 걸 먹어치우셨다. 요즘의 나도 그렇다. 변명하자면 이제는 먹는 게 다 돈이니 진짜 내 돈이 아깝고 먹을 게 없어서 다 먹는 거다.
9. 축구가 끝났다. 이제 집에 돌아가면 축구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직장 이야기를 물어오면, 호스트로 전직했다고 해야겠다.
10. 조회수 백만을 돌파했다. 구독자도 최근 삼일 동안 이백 명 가까이 늘었다. 회사 잘린 거랑 고시원에 산다는 글에 사람들이 좋아요를 계속 눌러주니 민망하다. 계속 고시원에 살아야 글이 나올 텐데, 그렇게 여기 오래 있고 싶지는 않다. 처음에는 삼 개월 정도 생각했다. 길어도 일 년. 유튜버한테 지하에 가둬두고 영상만 찍게 시키고 싶다는 댓글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11. 다른 작가 없이 내 글만 구독하는 분들도 계시다. 신기하다. 독자들이 본다는 부담감에 못 쓴다는 사람도 있던데, 아직까지는 괜찮은 거 같다.
12. 이유가 있다. 얼굴 없이 글을 쓰면 생동감이 떨어질 거 같아 인스타그램을 연결해뒀다. 이 구안이라는 작가가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 더 몰입해서 보실 거 같았다. 그런데 조회수가 20만 가까이 늘 동안 아무도 인스타그램을 추가하지 않았다. 평균 이상은 된다고 생각했는데 서글프다. 아무튼. 구독자와 조회수가 증가하는 건 기쁘지만, 생각보다 독자들은 '구안'이라는 사람 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그래서 편하게 쓴다.
13. 댓글을 삭제했다. 알고리즘을 타는 동안 1시간에 몇 천씩 조회수가 올라가고, 구독자 수도 몇십 명씩 늘었다. 그런데 안 좋은 댓글이 달리니 한 시간 동안 구독자가 멈췄다. 브런치는 그냥 일기장이네요. 너는 아이템 보는 눈이 너무 구리네요. 이 정도 댓글이라 악플이라고 하기에는 뭐하고 안 좋은 댓글이라고 정의했다.
댓글을 보면 한 번 더 글에 머물게 돼서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의도와는 다르게 안 좋은 분위기의 댓글이 달리면 사람들은 멈칫하고 그래 저 사람 말도 맞지. 일기를 싸고 앉아있네. 하고 돌아갈 수도 있다.
처음에는 무관심보다는 악플이 낫다고 생각했다. 심리적 타격도 없었다. 어차피 안 좋은 댓글을 쓰는 사람은 한 번 보고 안 올 사람이니 쓰든지 말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댓글을 보고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안 좋은 인상을 받으면, 그건 좋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 삭제했다.
14. 백만 조회수 및 천명 구독자. 감사합니다. 이 영광을 독자님들과 고시원, 이전 회사에 바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