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90일 차
1. 브런치북 프로젝트가 끝났다고 한다. 늘 기대를 안 하고 냈지만, 이번에는 조금 기대가 컸다. 고시원 시리즈로 구독자는 300명 넘게, 조회수는 50만 넘게 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제출하면서도 조금 민망했다면, 이번에는 스스로 '아 이 정도면 대중성과 개성을 살렸구나'라고 자위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암묵적으로 발표 일주일 정도 전이면 연락을 준다고 하니, 이번에도 아닌 거 같다.
2.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유독 피곤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굳이 따지면 하루 종일 워크맨 유튜브나 게임 방송을 보긴 했다. 브런치에서 다이어리를 받아가라고 알람을 주긴 했지만 그렇게 기쁜 일은 아니었다.
2-2. 브런치 표절 논란도 피곤의 원인 중 하나였다. 맞는 말을 하는 사람보다는,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래서 굳이 밖에서 말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은 글로 적을뿐.
3. 어머니가 일본어 강사를 하신다고 한다. 기대를 안 했지만 준비하신 걸 보니 그래도 몇 년 공부한 게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는 통할 거 같다.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대단하지 않냐고 하자, 할 말이 없으시단다. 경찰에서 십 년 더 있었으면 연금이나 월급이나 부족할 게 없었을 텐데, 뭐하러 피곤하게 저런 짓을 하냔다. 일은 그냥 일이지, 무슨 자아실현 따위를 찾느냐는 말에, 내가 괜히 민망해져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오늘 유독 피곤했던 건 아무런 알람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 거다.
4.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은 지 거의 6년 차다. 2학년 때부터 쭉 써왔다. 그때는 친구들에게도, 어디 가서도 작가라는 말을 잘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어디 가서 작가라고 말을 한다. 굳이 필명을 공개하지는 않지만, 조회수가 어떻고, 6년 차라는 말을 꺼낸다. 요즘 쓰는 글들은 내 민낯이긴 해도 글이 부끄럽다는 생각은 예전보다 덜 든다. 사람들의 반응도 신기하다. 그렇지만 이익은 없다. 왜 실업 급여는 이렇게 늦게 나오는지, 학교 조교를 구한다는 메시지에 괜히 싱숭생숭한지 모르겠다.
5. 재테크 모임에 갔는데, 다들 이것저것 많이 하고 계셨다. 작가라고 말을 꺼낸 것도, 돈을 버는 게 없어서 민망해서였는데, 다들 '퍼스널 브랜딩'이 되어있다고 해서 의외의 장점을 발견한 거 같았다. 그래서 꼭 출판을 해야만 좋은 것은 아니니 이 계정과 필명을 가지고 다른 걸 시도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6. 애인이 패딩이 더러워졌다고 했다. 중고나라에서 산 3만 원짜리 유니클로 패딩이다. 이거 입고 고시원 부엌에서 밥도 먹고, 옥상에서 담배도 피우고, 노트북도 하고, 가끔 추우면 입고 잔다.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 그냥 하하 웃었다.
7. 패딩을 입고 자야 한다. 위아래로 내복을 입고, 수면양말을 신어도 춥다. 손이 시리고, 정말 코끝이 시리다.
8. 샤워장 온도 조절이 참 어렵다. 살짝만 돌렸는데도 뜨겁고, 살짝만 돌렸는데도 미지근하다.
9. 헬스장에서 짐을 챙겨 왔다. 남은 기간을 다른 곳에서 채울 수 있게 노력한다는데, 반은 포기했다. 짐이라도 받아서 다행이다. 짐 챙기라는 연락을 왜 전날 새벽 1시에 하는 건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마인드가 문제라고 말하려다가, 사장이 굳이 프런트에 나와서 서명을 받고 하는 걸 봐서 의외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10. 이상한 꿈을 꿨다. 공무원이 됐다. 하루는 출근을 했는데, 내가 아는 주변 사람들이 다 바뀌어있었다. 심지어 앞자리는 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전 애인이었다. 이름을 불렀는데 대꾸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에게 "야 쟤가 왜 여기 있어?"라고 했는데, 닥치고 일이나 하라고 했다. 전 애인이 회사에 있을 수도 있지. 앉아서 일이나 하려고 했는데 내 컴퓨터가 없었다. 어라. 컴퓨터가 왜 없지. 당황해하며 꿈에서 깼다. 정말 헉헉거리면서 깼다. 그 다다음날도 비슷한 꿈을 꾸었다. 나름 잘해나간다고 생각했는데, 일에 대한 악몽과 남자로서의 자존감이 많이 무너졌나 보다. 앞가림을 못하는 6년차 작가. 이게 내 현실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