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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생 팀장 실패기의 시작

팀장이 되어보니 보였다. 내가 얼마나 찌질했고, 순수했고, 옳았는지.

by 삼색고양이

나는 만 31살에 팀장이 되었다. 한 직장에서 팀원으로 일을 하다 팀장으로 승진한 것이 아닌, 공석인 팀장자리에 경력직으로 입사를 한 것이다. 이 글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팀장으로서 첫 출근은 나의 팀장으로서 실패기의 대서사가 시작된 날과도 같았다.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 내가 다짐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하나. 조직, 주변 사람들을 비난하는데 초점을 두지 않을 것이다.

둘. 가감 없이 실패경험을 정리해 보는 것이다.

셋. 이 실패경험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아보지만, 이는 인격 성숙에 있어 정리정돈과정이지 나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는 것이다.


중간관리자로서 성공한 사람들이 쓴 글과는 결이 다를 것이다. 낯선 행성에 대뜸 팀장이란 이름을 달고 들어와 배척당했던 경험, 또 응집력을 이끌어 냈던 경험,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경험하고 스스로 퇴사를 하기까지의 스토리를 따라가며 내가 얼마나 찌질했고, 순수했고, 옳았는지 글로 정리해 볼 것이다.




우한 폐렴이 코로나로 이름을 바꾸면서 그것이 우리 삶을 몇 년씩이나 장악하게 될 줄은 몰랐다.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써야 하는데' 하면서 텅 빈 거실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을 때였다. 문득, '전염병이 창궐하여 생활에 곤란함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실존의 불안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실제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곳에서 일들이 도미노처럼 서서히 캔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클릭, 클릭, 클릭...

집에서 5킬로 정도 떨어진 번듯해 보이는 곳에서 (심지어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공공성을 가진 곳) 팀장을 뽑는 것이다. 팀장 지원 자격을 읽어보니 일단 가능했다. 물론 '박사과정을 2년 하는 동안 풀타임 직장생활을 관두고 조각조각 프리랜서로만 지냈는데, 다시 실무로 돌아가는 게 가능할까?'라는 고민도 들었다. 그런데 내가 일하는 분야는 실무경험만큼, 학위과정과 자격증 취득 같은 것도 시간의 수고로 인정해 준 탓에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따르릉...

서류 합격 발표도 나기 전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 알고 보니 내가 지원한 곳. 대표의 직통 연락이었다.


- 앞으로 그곳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회사라고 하겠다. 그 회사, 이 회사, 저 회사.

- 말나 온 김에 조직도도 한번 정리해 본다. 물론 실제로 부르는 명칭하고 다르다. 나는 팀장으로 하고, 팀원들은 A, B, C로 연번을 붙이겠다. 그리고 조직이 단출했어서 팀원, 팀장, 그다음을 대표로 하겠다. 그리고 나중에 회사를 관리하는 두 상위 조직이 등장하는데... 이건 그때 가서 설명하겠다.


"나 회사 대표인데요. 잠깐 이리로 와줄 수 있나요?"

"네? 아... 네..."


'입사지원 서류에 빠뜨린 게 있을까? 그렇다 쳐도 왜 대표가 직접 연락을?'

그래도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구경이나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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