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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이을정 Aug 05. 2024

나는 작가이다

작가라고 말하려니 부끄럽지만 작가라고 말해보렵니다.

자기소개 글      


  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풀면 딱 떨어지는 정답이 있는 수학이 좋았다. 별의 등급을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내가 마시는 물의 원소를 알고 운동에너지를 계산하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우리 집 앞에 봄에는 쑥 향이, 여름에는 솔 향이, 가을에는 밤톨이, 겨울에는 하얀 눈송이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숲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나는 과학자가 되지 못했다. 

  나는 빵가게 주인도 되고 싶었다. 밀가루에 물을 부었는데 가루가 빵이 된다. 말랑말랑한 밀가루 반죽이 포슬포슬한 식빵이 된다. 그런데 봄에 핀 라일락 향이 밤마다 창문 너머로 로미오처럼 날 불렀다. 겨우 의자에 붙여 놓은 엉덩이를 기어코 들어 올려 집 앞 화단에 핀 라일락 꽃잎에 코를 대게 한다. 보랏빛 주문에 걸려들고 만 것이다. 

  나는 발레리나도 되고 싶었다. 무대 위 조명 아래에서 길쭉 날렵한 팔선을 쭉 뻗으면 멋짐이, 발끝으로 서서 손을 가슴에 꼭 끌어안으면 절절함이 묻어나는 발레리나도 되고 싶었다. 이번에는 보름달 때문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되고 싶어하던 나의 사춘기 시절 창가에 찾아와 큼직한 얼굴을 들이밀면 어쩌겠는가! 그를 받아들일 수밖에! 늑대 소녀처럼 보름달만 뜨면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달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났다.

  결국 나는 과학자도, 빵가게 주인도, 발레리나도 되지 못했다. 그 대신 나는 가난한 작가가 되었다. 대신 나의 상상 속 주인공들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으니 참말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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