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마지막 날이 돼서야 써보는 유퀴즈온더블럭 출연 후기
2023년 올 한 해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유퀴즈온더블럭에 출연한 순간이다. 나는 남자간호사 동료와 함께 199회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편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2023년 6월 21일 수요일에 전국으로 방송되었다. 그동안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로서의 업무에 집중하느라, '돌보는 마음, 위하는 마음' 책 작업을 하느라,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느라 등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후기를 쓴다.
1. 섭외과정
촬영 한 달 전쯤 내가 다니고 있는 병원 홍보팀을 통해 섭외메일이 왔다. 섭외는 2023년 2월에 출간된 '간호사가 되기로 했다' (2023년, 시대의창) 책을 계기로 이루어졌는데 이 책은 14인의 남자간호사가 편견 속에서도 꿈꾸고 행동하며 주변을 따뜻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써보자는 마음으로 의기투합하여 쓴 책이다. 방송 시간 관계상 실제 촬영 가능한 인원은 2명이었는데, 제작진 측에서 4명의 간호사선생님과 사전 인터뷰를 진행해 보고 최종 출연자를 결정해도 될지 양해 연락을 주셨다. 각 부서장님과 인터뷰 대상자에게 원내 메일을 통해 소식이 전해졌고 그렇게 인터뷰 날짜가 다가왔다.
2. 인터뷰
사전 인터뷰에서 어떤 질문을 받을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이야기하자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일하느라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전화 통화를 하기로 예정한 시간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빨리 뛰는 게 느껴졌다. 퇴근하고 집에서 통화를 시작했는데 방송작가님의 목소리를 듣고 몇 마디 나누기 시작하자 다행히 긴장이 풀렸다. 작가님께서는 내가 간호사가 된 계기, 근무하면서 기억나는 사건, 하는 일, 책을 쓰게 된 계기 등을 질문하셨는데 인터뷰를 준비하기 전 나에 대해 검색해 보고, 책도 다 찾아서 읽어보았다고 말씀해 주셨다. 2시간가량의 인터뷰를 마치며 방송 출연을 할 수 있을지 전혀 감도 오지 않았지만, 그걸 떠나서 나를 향한 작가님의 따스한 관심이 감사했다.
3. 촬영
며칠 뒤, 출근해서 열어 본 메일함에 새로운 메일이 와있었다. <유퀴즈...>로 시작하는 메일 제목을 보고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메일을 확인해 보니 최종 2인이 선정되었는데, 감사하게도 방송 출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다 같이 책을 썼는데, 참여한 모든 간호사선생님들이 함께 나갈 수 없음에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이 컸다. 그때 결심했다. 방송에 나가서 내가 드러나기보다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면 좋겠다고. 간호사가 병원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간호를 통해서 전하는 사랑의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꽤 이른 시간에 녹화 일정이 잡혔다. 세탁소에 드라이클리닝을 맡긴 근무복을 들고 약속한 장소까지 지하철을 이용했다. 평소 병원에 출근할 땐 자취방에서 거리가 가까워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없는데 출근시간의 지하철은 정말 사람들로 붐볐다. 안 그래도 여름 날씨가 더웠는데,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다.
녹화 장소까지 가는 길이 험난했기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막상 도착해서 큰 자기와 아기 자기의 모습을 보고 그제야 실감이 났다. '와 이게 정말 내 삶에 펼쳐지고 있는 일인가...' 비현실적인 현실에 머릿속은 백지장이 되고 있었는데 작가님이 다급히 나를 불렀다. "이제 다음팀으로 준비해야 해서 위층으로 올라오세요. 분장팀이 대기하시고 계세요."
"여기 앉으시겠어요?"
거울과 의자, 그리고 앞에 펼쳐져 있는 수많은 화장품들. 전문가에게 분장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영광스럽게도 두 분께서 준비를 도와주셨는데, 한 분은 머리를 봐주셨고, 한 분은 유려한 손놀림으로 얼굴 메이크업을 도와주셨다. 아마 내 인생에서 이런 경험을 해볼 기회는 앞으로 결혼식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전문가의 손길을 받고서 동료와 함께 촬영 현장으로 향했다. "이제 들어가시면 돼요." 작가님의 말을 듣고 걸어갔는데 점점 가까워지는 유느님과 조셉의 모습이 보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의자에 앉으니 내 앞에는 족히 10여 대는 돼 보이는 카메라와 수많은 촬영 스태프가 있었다. 현장에 압도되어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유재석 님과 조세호 님께서 진행을 잘해주셔서 이내 편안하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준비를 해간다고 했는데 머릿속에는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고 준비해 주신 질문에 즉흥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소 내향적인 편인데, 같이 출연한 동료는 매우 외향적인 편이어서 마침 알맞게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촬영은 원테이크로 끝났고 함께 사진을 찍으며 마무리됐다.
일주일 정도 뒤에 유퀴즈온더블럭 촬영팀이 병원에서 일하는 모습을 담고자 병원에 방문하셨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그날 갑자기 응급 심장이식 수술이 잡혔으며 인터뷰를 하다가 2시간가량 일을 하느라 촬영이 중단되었다. 전화는 계속 오지, 촬영팀은 계속 기다리고 계시지... 나는 내색은 못했지만 머리는 다 헝클어지고, 일하랴, 촬영하랴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다.
곁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보시던 촬영팀 중 한 분께서는 선생님 정말 대단하고 존경한다며, 자신은 절대 못할 거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내가 볼 때는 촬영팀도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 촬영하시는 게 쉽지 않게 느껴졌는데 말이다. 아무튼, 타인이 내가 하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봐 준다는 사실 자체로 위로받았다. 많이 정신없었지만, 실제 일하는 모습이 영상으로 담길 수 있어서 감사했다.
4. 방송 이후 반응
"유재석 씨 어땠어요?"
내가 유퀴즈온더블럭 방송 출연 이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나는 주로 "방송에서 보는 것 그대로 정말 게스트들을 편안하게 진행해 주시고 덕분에 이야기를 잘할 수 있었습니다.", "정장을 입고 계셨는데 몸이 정말 탄탄하다는 게 느껴졌어요. 역시 자기 관리를 정말 철저하게 하시는구나 느껴졌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이외에도 방송을 보시고 "마음이 감동했고 초심으로 되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과, "간호사 얘기를 많이 해주셔서 좋았고 울다가, 웃다가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얼마 뒤에 함께 일하는 장기이식코디네이터 선생님께로부터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한 뇌사장기기증자 가족분들께서 최근에 방영된 유퀴즈온더블럭 방송을 보시고 뇌사장기기증을 결심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나는 이 소식에 가장 큰 보람을 느꼈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방송 출연하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번 이 글을 통해 뇌사장기기증자분과 가족분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하며, 삶에 평안함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유퀴즈~?"라는 질문에 "YES"라고 대답하고 문제를 들었는데 평소에 예상할 수 없는 질문을 받았다. 감사하게도 그날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서 정답을 맞혔고 상금을 받았다. 상금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동료와 함께 상의했는데 고민할 것 없이 소아암 환자 치료비를 위해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유퀴즈온더블럭을 통해 전한 메시지와 상금 기부 소식이 병원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환자 및 보호자분들에게 따뜻한 위로로 전해지길 바라봅니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잘 드러나지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의료진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