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앙경찰학교에서 만난 칸트

칸트의 순수경찰비판

by polisopher




중앙경찰학교 시절, 동기 중에 임마누엘 칸트가 있었다. 같은 학급이 아니었기 때문에 먼발치에서만 그를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른쪽 귀에 볼펜을 꽂은 채로 손에 들린 작은 노트 모서리를 왼손바닥에 툭툭 쳐가며 운동장을 크게 돌거나 때로는 가만히 서서 하늘을 응시하였고, 멍한 표정으로 알 수 없는 곳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함성 소리에 깜짝 놀라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뜀박질을 하는 동기생들을 보며 흐뭇해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고자 경찰을 자원했다는 칸트의 인터뷰 기사가 떠올랐다. 당대의 철학자가 명성과 부를 다 내려놓고 터무니없게도 경찰이 되고자 했을 때 세상은 그의 행보를 비난하기보다는 존경의 시선과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경찰학교 입학 이후 거짓말처럼 그는 세상의 관심 밖으로 던져졌다.

먼발치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의 심정을 알 수 없었지만 홀가분해 보였다. 오히려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만큼 조직 생활에 활기차게 적응해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6개월이 흘러 같은 지방경찰청으로 발령이 났다.


그를 자유롭게 두는 것이 존중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서 경찰학교 시절에는 한 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진정한 경찰이 되었고 같은 길을 가는 동료이니만큼 격려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사를 건넸다.


“저는 선생의 사상을 접하고 인생이 바뀐 사람입니다. 외람되지만 저희가 다음에 만나게 되는 날, 칸트 당신이 경험한 경찰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어 보면 굉장할 것 같습니다만, 어떠세요? 저의 제안이.”


“자신의 철학을 실천으로 옮긴 저자와 저자의 사상을 실천으로 옮긴 독자 간의 대담이라…… 재밌겠는데요. 좋습니다. 그 제안을 기쁘게 받겠습니다.”


칸트와 나는 손을 굳게 잡았다.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10여년만의 일이었다. 강당 로비에 비치된 교육생 명단에 그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10년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한 운명의 날이 와버렸다고 생각했다. 서명이 없는 것을 보니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 했다. 그때 웅성거리며 들어오는 한 무리의 틈바구니 속에서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10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그의 모습은 거의 그대로였고 오히려 표정은 더욱 젊어진 듯 생생해 보였다. 10여 미터 떨어진 거리였지만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웃었다. 그 역시도 마법처럼 체결되었던 약속이 이렇게 이루어지게 되니 멋쩍었던 모양이다.


“오랜만입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지요?”


가벼운 인사와 웃음을 교환한 우리는 촌각을 다투는 비즈니스 파트너처럼 즉시 약속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선생과 제가 경찰 생활을 하게 된지 올해로 딱 10년이 되었습니다. 경찰관으로서 3분의 1일을 살아 온 셈입니다. 소감이랄까. 기분은 어떠세요?”


“일단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20여년 더 할 수 있다니 기쁘죠. 그러나 조직이 지금과 같다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을 겁니다. 10여년 근무하면서 경찰의 일상은 늘 위기였다고 봤는데 그 위기가 여전하고 최근에는 더 고착화되어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러다가 경찰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첫 말씀부터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만드는 군요. 경찰은 위기에 처했고 그래서 저 아래로 추락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왜 경찰이 위기에 처했는지 설명 해주실 수 있으세요?”


“못할 건 없지만, 아무래도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 같죠?”

“점심시간에 만나면 어떨까요? 차로 15분 정도만 나가면 호수 산책로를 끼고 괜찮은 카페가 하나 있거든요.”

“좋습니다.”


우리들은 점심시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강의실로 향했다.


ㆍ대한민국 파출소 경관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