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강의가 끝나자마자 칸트를 내 차에 태우고 카페로 달렸다. 파스타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좀 걷고 싶다는 칸트의 요청으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다. 커피 전문점이 즐비한 곳이지만 가격이 꽤 비쌌다. 하지만 그와 함께 하고 있는 이 순간의 가치를 어떻게 값으로 매길 수 있겠는가 생각하며 계산을 하려는 순간, 칸트는 손바닥을 세워 보이며 커피 값은 자기가 내고 싶다고 했다.
“우선 오전에 말씀하시길 경찰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K 당신은 우리 경찰이 본질을 지켜가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들을 준비를 하고 있는 터에 반문하시니 당황스럽습니다만, 굳이 말씀을 드리자면 저 역시 오래전부터 경찰이 본질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런 생각이 들던 가요?”
“경찰 조직 전반에 모순이 지배하고 있고 그 모순으로 인하여 조직원들이 모순적인 행동을 하게 되면서 결국에는 조직이 추구하는 이상과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다면 K가 보는 그 모순이라는 것이 뭡니까?”
“그것은 계급과 승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답은 질문의 끝을 기다리지 않았다. 칸트는 입술을 꼭 다문 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저 또한 K와 같은 생각입니다. 경찰 모순의 원인을 그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대화를 더 나누어봐야겠지만 아무래도 K와 저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네요.”
칸트는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나도 거의 동시에 커피 잔에 입술을 뗐다.
“혹시 제가 쓴 책을 보셨나요?”
“네, 순수 이성 비판은 개론서와 강의록 정도를 보았을 뿐이지만 실천이성비판과 윤리 형이상학 정초는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온몸이 뒤틀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제가 그 내용을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주십시오. 페이지를 다 넘기고 책을 덮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거든요.”
나는 찢기고 구겨진 표지에 페이지마다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은 그것들을 가방에서 꺼내 보였다.
“대단하군요. 이렇게 제 책에 애정을 가져주시다니요. 고맙고 영광입니다. 사실 제가 쓰긴 했습니다만, 오랜만에 보면 이게 무슨 뜻이더라 저 역시 알쏭달쏭할 때가 있습니다.”
칸트는 웃으며 말했다.
“K는 그 두 권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이해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제 한계 안에서.. 겨우..”
그의 단정에 조심스럽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경찰에 투신한 계기는 제 철학이 어떻게 실천적으로 유용할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선택이 왜 경찰이었어야 했는가는 경찰이 가지고 있는 본질에 반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공직자는 국가와 국민의 봉사자입니다. 하지만 다른 공직에 비해 경찰은 사회정의를 몸으로 뛰며 실현하는 조직이라고 판단했고 그것이 제 실천철학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기본적으로 제 철학은 인간이 얼마나 숭고한 존재인가에 대한 숙고의 결과물입니다. 경찰은 지구 상에서 가장 다양한 사람들 특히 가장 힘겹고 고통스럽고 절박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행복보다는 불행하고 기쁨보다는 슬픔이, 희망보다는 절망에 속해 있는 사람들 말이죠.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을 만나는 경찰은 어떨까? 국가와 국민의 봉사자로서, 국민의 자유나 헌법적 가치를 수호해야 하고 범죄자를 잡아들여 사회정의를 세워야 하는 이들은 과연 행복하고 희망적일까라는 의문이 일어 확인해보고 싶었고, 할 수만 있다면 나의 철학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아무튼 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자신의 역할을 해야 했다는 그의 말에서 실천이성비판 한 구절을 듣는 것 같았다.
“칸트 선생께서는 10년 전 나와의 약속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다시 만나게 되면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었죠. 오늘은 바로 그 약속을 지키는 날입니다. 단순한 추억 나누기가 아니라 그동안 품고 있었던 이야기를 가능하면 모두 듣고 싶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단순히 조직을 바라보는 것 이상의 어떤 대안을 담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에게 그것을 기대하고 있고 그래서 희망으로 온몸이 전율하고 있습니다. 의지로 억누르고 있지 않다면 저는 허공에 떠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부담을 주시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와 결말을 미리 정해놓고 저에게 달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런 식의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강요라는 것을 K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뜻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 테지만 저 역시 오늘 이 자리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본 10년을 말할 것입니다. 그 안에 문제의식이 드러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안이 될 만한 이야기도 반짝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릅니다. 수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
“불쾌하셨다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말씀대로 강요의 뜻으로 그리 표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기대와 바람까지 없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부담을 드린 점에 대하여 다시 사과드립니다. 저 역시 칸트 선생만큼 경찰에 대한 애착이 있는 자로서 10년을 그리 보냈습니다. 벌써 중요한 점에서 선생과 저의 문제의식이 함께 흐르고 있음을 확인한 만큼 지금 이 순간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풍성하고 원활한 대화를 위해 제안을 드려보려고 합니다만 우선 제가 생각했던 경찰의 문제를 제시하겠습니다. 그럼 선생께선 그것에 대하여 당신의 시각으로 말씀을 해주시는 겁니다. 물론 형식은 따로 없고 편하게 한다는 것을 전제하지만 귀한 시간 두서없이 흘러 보내면 너무 아까울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좋습니다. 어차피 저는 형식을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틀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당신도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K 당신의 생각도 궁금하니까요.”
“알겠습니다. 대화란 서로의 마음을 일부분 터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제 생각을 이야기하는데 거부할 이유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