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60'부터 라면서요..

근데 경찰은요..

by polisopher


띵동, 띵동, 띵동, 띵동


시민들이 경찰을 찾는 벨소리입니다. 기차역, 전철과 고속터미널, 유흥가와 재래시장을 끼고 있는 지구대에서 평일에도 주야간 100여 건, 불타는 금요일과 끓어오르는 토요일 정도면 150건에 육박하거나 훌쩍 뛰어넘기도 하는 신고 건수로 치면 톱클래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날씨가 더워져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이 많아졌고 때문에 떨어지는 신고의 90%가량은 술과 연관이 되어있습니다. "술을 먹고 쓰러져 있다."부터 술 값을 내지 않는 일, 사람과 싸우는 일, 택시 요금을 내지 않고 폭행하거나, 성추행과 같은 성범죄, 부부싸움, 청소년 비행과 같은 출동하는 거의 모든 신고가 술로 빚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렇다 보니 사건을 처리하는데 무척 애를 먹습니다.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취기, 적절하게 풀린 눈빛은 대화가 되지 않을 것을 예측하게 해 주는데 귀가 조치에 순순히 응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욕설은 기본이고 폭력도 서슴지 않기 때문에 모욕이나 공무집행 방해죄처럼 제2차 사건으로 판이 커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파출소나 지구대에 배정된 순찰차는 치안수요가 반영됩니다. 바쁜 곳은 당연히 한두 대 더 배정이 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범인이나 주취자 처리처럼 기본적으로 일정 시간이 소요되는 사건의 경우는 신고출동이 밀리는 원인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고 별 수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마무리는 지어야죠. 외면할 수 있는 신고는 없으니까요. 야속하게도 시민들은 경찰이 빨리 오지 않는다고 다그치기 일쑤고, 경찰들은 스피드 업을 해보지만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끼, 니들 부모 자식 다 **버릴 거야" 목청이 얼마나 큰지 사무실이 쩌렁쩌렁 울립니다. 수갑을 차고도 타오르는 분노감과 흥분감이 식지 않은 이들은 술이 깨거나 지쳐 쓰러질 때까지 고함을 지르고 발길질을 하고 욕설을 해댑니다. 그뿐 아니라 다른 일로 체포된 이와 눈이 맞아 서로 싸움을 합니다. 싸움의 신 같습니다. 그때 자기 딸이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찾아온 부모는 발을 동동 굴립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신고전화는 밀려옵니다. 접수를 했지만 출동할 경관은 없습니다. 아수라장, CHAOS 그 자체입니다. 신고 쓰나미라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폭풍이 잠시 휩쓸고 지난 자리 아주 잠시지만 적막함이 감돕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시간을 매우 소중히 써야 합니다. 준비된 야식을 엉거주춤 서서 먹습니다. 금방이라도 신고 출동을 나갈 태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띵동" 신고음이 울립니다. 나무젓가락 좌우로 뜯어내 컵라면 뚜껑을 찢어내던 경찰들은 그만 굳어버립니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 어떤 순찰차가 배정될지 긴장합니다. 그러다 당첨되면 '에이 씨~ 젓가락도 못 담갔는데...' 투덜거리며 차 키를 꽂습니다. 이렇게 내다 버린 컵라면이 한 박스는 될 것 같습니다.


​​나는 항상 놀랍니다. 동시에 두 개의 전화를 받고, 눈은 모니터를 응시하고 어깨의 무전기 소리를 청취하면서도 동료와 몸짓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경지, 갖은 욕설을 들으면서도 조카나 아들뻘 되는 주취자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살살거리기도 하고, 때론 함께 고함을 지르며 피의자들과 뒤엉키다가 풀어진 옷가지를 주섬주섬, 컵라면이 불었다며 씽긋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여유가 어디서 나오는지 말입니다.


​​언젠가 각 직업별로 평균수명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경찰은 60대 초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퇴임 직후이거나, 정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입니다. 제2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 터닝포인트로 보는 게 기본 정서입니다. 말하자면 이제까지 국민을 위해 앞만 보고 뛰었다면 자신과 가족을 돌아보며 여행도 즐기고 심적 여유도 누리면서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는 시기인데.. 이렇게 젊은 경찰들이 세상을 뜨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신고가 가라앉았습니다. 사무실에 모여든 경찰들은 웅성 웅성댑니다. 엊그제 날라 온 부고장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함께 근무했다는 둥, 인품이 어땠다는 둥, 부고장 속 인물에 대한 이야기 같습니다. 슬프게도 그분 역시 경찰 평균 연령을 높여주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문득, 쏟아지는 신고 건수를 헤아려 보며 평균 연령 60이라는 것이 우연이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극단적인 사람들을 만나며 극단적인 위험과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는 경찰들이니 말입니다.

띵동

에고~ 또 신고가 들어오네요. 여러 사람이 싸운답니다. 모든 순찰차가 다 나가야 할까 봐요.


ㆍ대한민국 파출소 경관ㆍ14.5.31.



■ 언론

- 경찰 평균 수명 '63세'(충북일보. 14.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