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찰차를 타고 근무를 하다 보면 청소년들이 몰려다니며 시끄럽게 떠들고, 담배를 피운다며 쫓아달라는 신고가 참 많이 들어온다.
옛날 같았으면 ‘귓방맹이’를 맞아도 부모나 학교에 통보될 것이 무서워 찍소리도 못했겠지만 ‘스트리트 파이터’가 되어버린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그들을 가로막는 자는 누구든 도전자로 받아들인다.
때문에 어른들은 혀만 찰뿐, 어찌해 볼 방법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신경질적이다 싶을 만큼 경찰을 찾는다.
하지만 경찰이라고 별 수 없다. 그들은 경찰이 다가오면 더욱 용기가 나는 것 같다. 친구들이 많을수록 의기양양해진다. 집에 가라고 해도 혼을 내도 빈정거림으로 되받아친다. 경찰이 대한민국 대표 ‘물방망이’라는 것을 녀석들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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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몰려있는 곳을 가보면 늘 마주치는 현상인데 그들이 뱉어 놓은 침이 호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담배꽁초와 함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라면 너 나할 것 없이 바닥에 침 뱉는 것을 즐기지만 이들은 좀 과하다 싶을 만큼 뱉는다.
놀이일까? 아니면 영역 표시일까? 때로는 접근을 경고하는 부비 트랩 같다. 그래서 그곳을 건드리지 않고 다가가는 것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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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아이들은 대개 부모님이 안 계시거나 한부모이거나 조부모에게 양육되거나 맞벌이 부모 아래 있었다. 이는 깊은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며, 다시 말해 사랑에 무척 고파 있다고 생각되는 지점이다.
육신의 배고픔은 고통스럽다. 따라서 뱃속에 무언가 채워 넣으려 한다. 사랑에 고픈 것도 다르지 않을 것이므로 본능적으로 무언가 채워 넣으려고 시도한다. 때론 그 결핍이 아이들의 이탈행위를 부추기는 분노의 싹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사랑 고픔’은 아이들에게 비슷한 처지에 놓인 또래를 찾도록 해 주고 그렇게 만난 그들은 ‘동질감’, ‘동병상련’ 따위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허기진 속을 달랜다.
그것만으로는 결핍을 다스리기에 부족해서인가.. 종종 폭언이나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지만, 덜 공격적인 데다 보다 안정적인 방법으로 콘크리트를 향해 침을 뱉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마! 이런 데서 시끄럽게 노니까 어른들이 신고하지!”
“아저씨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요?”
“이 녀석들아 학교 운동장 같은데 가면 좋잖아!”
“선생님이 시끄럽다고 나가래요.”
“음... 그럼 집에 일찍 들어가면 되겠네, 엄마가 기다리시잖아.”
“엄마 없는데요.”
“.......”
한 번 뱉을 때 이혼한 부모님을 생각한다. 또 한 번 뱉어내면서 그들을 품지 못하는 교육현장을 떠 올린다. 계속해서 뱉어내면서 자신들을 들 고양이 취급하는 어른들과 경찰관을 그리는 것이다. 난잡하게 뱉어 놓은 침의 형태와 크기가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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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는 노령화와 저 출산율은 나라의 인구 부양정책을 뒤 흔들면서 각종 육아 혜택, 출산에 따른 현금 지불 그리고 직장 내 인사 상 인센티브 등을 쏟아내게 했다. 하지만 의아스러운 것은 한쪽에서는 아이만 낳으면 내 새끼처럼 도맡아 키워줄 것처럼 호들갑 떨면서도 한편에서는 그들을 내쫓고 경찰에 신고하기에 급급하다.
생각해본다. 사회가 아이들을 품지 못하고 그럴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 출산율이 높아진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이런 모양새라면, 출산율 상승이란 결국 침 뱉는 아이들만 길러내는 꼴이지 아니겠는가.
-대한민국 파출소 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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