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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isopher Sep 18. 2024

「베테랑2」 서도철과 가오論

‘뒈지기 싫으면 빨랑 자바이.. C'

경찰, ‘인간 종합 전시장        

  

영화 속 경찰 캐릭터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로서는 크게 두 명으로 좁힐 수 있다. ‘베테랑’(서도철)의 황정민, ‘범죄도시’(마석도)의 마동석이다. 이들이 등장하기 전 90년대는 ‘투캅스’의 안성기(조 형사), 박중훈(강 형사), 김보성(이 형사), 2000년대 들어 ‘공공의 적’의 설경구(강철중)가 대표했지만 투캅스는 ‘포돌이’가 되기 전의 삥 뜯는 경찰의 전형을 보여준 것으로서 이제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고, 강동서 꼴통 형사 강철중은 검찰로 넘어갔다가, 다시 경찰청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정체성을 잃었다.



<이들 외에 ‘와일드카드’와 ‘부당거래’도 빠뜨릴 수 없다>

   


688, 1,269, 1,068, 1,150, 1-4편 합쳐 4천만의 획을 그은 범죄도시 마석도는 1편의 임팩트를 넘어서지 못했음에도 주먹의 힘이 나날이 강력해진 덕분에 ‘마블리’라는 애칭과 더불어 80~90년대 ‘외계에서 온 우뢰매’의 심형래(에스퍼맨)를 잇는 명실상부한 ‘K-히어로’로 자리매김했다. 2010년 나타난 ‘부당거래’는 일선서 형사반장 최철기의 시선에서 대한민국 권력 서열 1위가 누구인지 보여주었고, 2015년에 이은 2024년의 ‘베테랑’ 서도철은 그래도 경찰에게는 돈과 권력보다는 ‘가오’가 먼저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나는 꼬꼬무류의 리얼범죄예능은 업무의 연장선에 있는듯하여 안 본다. 반면 스크린 속 경찰은 연출가와 배우들 그리고 관객들에게 어떻게 소비되는지 흥미롭다. 탐욕과 정의, 인간미와 비정함 등 오만가지 정념을 여봐란듯이 보여준다. 이처럼 인간 속을 화끈하게 까발려주는 캐릭터란 경찰만 한 것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감각을 남용한다면 마석도케이스가 된다. 여전히 장첸위성락’, ‘진실의 방의 잔상이 짙다면 1편 이후로는 그저 죽이고, 웃기는 것만 보여주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서도철, 투사된 나와 당신


그런가 하면 ‘베테랑’은 상대적으로 절제미가 있다. 마치 오늘의 대한민국을 거울처럼 보는 것 같다. 공간을 초월해 벌어지고 있는 온갖 사건 중, 9시 뉴스데스크에 보도될 만한 것들이다. 학폭의 가해자와 피해자, 권력의 갑질에 꺾인 청년들, 찢어진 법망을 요리조리 통과해 버리는 흉악범들, 그들을 피해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걸 견디지 못하고 생을 저버린 피해자들, 그런 그들을 돈벌이로 써먹는 ‘사이버 레커’들 말이다. 그래서 펀치 한방으로 저만치 날려 보내지 않는 베테랑은 왠지 개운하지 않다.
  
베테랑에서 등장하는 경찰관들은 마스크를 낀 자의 팔짱을 낀 채, 포토라인을 황급히 벗어나, 형기차에 태우고 있는 이름도 얼굴도 스쳐 지나가버리는 당신이고, 명절날 취재 나온 기자의 뒤편에서 불봉을 흔들고 있을 당신이다. 우리 중에 마석도는 없다. 하지만 아니 어쩌면 대부분 서도철일 것이다. 입만 열면 지휘부를 향해 탄식하고, 진상고객, 범죄자에게는 쥐어짜듯 악다구니를 쏟아내는, 그럼에도 뛰어야 하는, 이 길이 맞는가 싶으면서도 뛰고 있는 바로 나와 당신 말이다.
  
운명의 38 국도¹ 교차로 
  
‘해치’는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즉 ‘정의의 심판관’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베테랑 속 ‘해치’는 무중력 상태가 되어버린 공권력 대신 악을 심판하는 베일에 가려진 사이버 래커이다. 충분한 죗값을 치르지 않고 일상을 살고 있다고 지목된 자들을 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해주는 존재이다.  하지만 법이 시퍼렇게 눈뜨고 있는 이 나라에서 용납될 수 없는 범죄행위일 뿐. 허나 사람들은 열광하고 녀석의 용의주도함에 경찰들은 애를 먹는다.


빌런이자 경찰관인 우유 빛 박선우(정해인)가 왜 사적복수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사실 굳이 알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를 사이코패스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동기를 찾는다고 진을 빼지 않아도 된다. 박선우는 서도철도 살인을 욕망하고 있다고 보았다. ‘저런 놈은 조용히 죽였어야 하는데...’, ‘가만 두지 않겠다...’ 서도철의 언어를 체크하며 자신의 추측을 확인해 나간다. 그는 서도철을 동료 삼아 나쁜 놈들을 처단하고자 . 아니 철저한 응징만을 즐기고 싶었.
  
서도철은 악랄한 범죄자들에게만 관대한 것 같은 사법시스템이 불만이다. 그래서 늘 ‘죽여버린다’, ‘두이진다’같은 욕설을 입에 달고 산다. 영화는 박선우의 얼굴 위에 서도철을 겹쳐 보이면서 박선우의 상상에 힘을 실어주 모양새를 취한다. 하지만 그들은 38 국도 끝 교차로에서 갈라선다. 박선우와 달리 서도철이 향한 증오는 ‘범죄자’가 아닌 ‘범죄’였다. 죽이고 싶을 만큼 흉악범이 밉지만 진짜 죽어야 할 것은 범죄 그 자체이다. ‘범죄자 시신’ 앞에서 그는 말한다.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은 없다.
 

         

  <박선우와 서도철의 싸움, 관객들은 누구를 응원했을까?>
 


정의란 무엇인가!’ ?


‘해치’를 잡기 위해 현장을 뒤지던 서도철 일행은 용의 차량을 발견한다. 차량 내부는 오줌이 담긴 델몬트 ‘훼미리병’, 옷가지, 먹다 남은 것들이 뒤엉켜있다. 이때 쓰레기들 사이로 한 권의 책이 포착된다. ‘정의란 무엇인가’, 영화는 문제의식을 분명히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수백만 독자에게 떠넘긴 이 무책임한 책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 또한 그것을 관객에게 토스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질문에 충실하고 싶다면 우리는 서도철과 박선우가 갈라진 38 국도로 핸들을 돌려야 한다.
  
서도철과 박선우는 둘 다 경찰이다. 박선우는 자신의 범행을 타인에게 뒤집어씌울 만큼 교활하고, 들키지 않을 만큼 주도면밀하며, ‘UFC’로 단련된 몸을 갖췄다. 잘생기고 싸움도 잘하고 천재적인 이 젊은 경찰은 조국의 믿음에 처음부터 응할 생각이 없었다. ² ‘경찰’은 단지 자신의 ‘살인 욕망’을 가리기 위한 ‘페르소나’³였을 뿐이다. ‘사람잡이’에 진심이었던 그에게 홍길동의 ‘義’는 애초에 없었다. ‘최악의 상황이면 죽여도 되나요?' 박선우는 므흣하게 묻는다. ‘그래도 죽이지는 마라’ 서도철은 썩소로 답한다.
  
늘 죽여 버린다는 ‘살의’를 들이쉬고 내뱉는 서도철, 나는 그에게서 사람을 죽이고 싶은 욕구가 있음을 짐작해 본다. 그는 범인을 때려잡는 과정에서 ‘죽임’의 문턱을 넘고 싶은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 겨우 참아냈겠지만 자신의 아들이 또래들에게 두들겨 맞는 걸 보았을 때 피가 거꾸로 솟았을 이다. 살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그이지만 그의 살인은 늘 입에서 끝난다. ‘이런 C-8 Bird’⁴. 이것이 박선우와 직진할 수 없는 결정적 차이다. 바로 나와 당신이 서도철에게 공감해야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가오론(顔論)          


1편에서 ‘가오’는 돈과의 대립 관계에서 의미가 있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막강한 부를 무기로 온갖 해괴한 짓거리를 벌이는 조태오를 의식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돈이 닿을 수 없는 ‘경찰의 숭고함’ 같은 거 말이다. 2편에서 ‘가오’는 사람 목숨과 관련한다. 마트에서 진라면 한 봉지 사는 일처럼 박선우에게 살인은 너무나 심플하다. 반면, 서도철은 ‘죽어 마땅한 목숨은 없다’며 ‘생명의 존엄’을 분명히 한다. 궁상맞은 서도철과 거리가  보이는 높은 가치, 그는 욕을 토해내며 비껴간다.     

      

‘가오’는 호쾌하게 웃지 못하는 얼굴이다. 엿 같은 현실과 쪽팔리게 살고 싶지 않은 속내를 모두 담고 있다. 죽어버리겠다는 사람들은 살려야 하지만, 죽어야 하고 죽이고 싶은 인간들도 살려야 한다. 그러므로 서도철은 맑게 웃는 법을 잃었다. 즉 ‘가오’는 ‘살의’와 ‘살이’의 경계에서 시시각각 샛길로 새고 싶어 하는 ''이고, 그럴 때마다 ‘뒈지기 싫으면 빨랑 자바이 C...’라는 소리에 놀라 핸들을 고쳐 잡는 '당신'이다. 이런 ‘가오’가 경찰의 ‘숭고’와 생명의 ‘존엄’을 붙들고 있는 중이다.  



<쓸데없는 주석>

¹ 38번 국도가 우리 관내를 관통하고 있어서.. 그냥..

² ‘젊은 경찰관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노라’ 이런 달달한 것이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³ 고대 그리스 때부터 유래했다고 하나 그냥 ‘탈바가지’ 정도로 보면 될 듯

⁴ 황정민 배우를 떠올리며 그대로 읊어보라. 당장 서도철이 될 것이다.

[경찰이라는 장르] '현장경찰과 경찰청 모두의 명예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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