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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법인장...

뜬금없는 싱가폴의 하루

"보스 보스!"

내가 몇 번을 말했는데도 저넘은 계속 나를 보스라고 한다. 내가 법인장을 맡은지도 겨우 두달여 남짓 넘어가는 찰라에 처음 취임하면서 분명 선언한게 나는 "Boss"가 아니라 "Leader"로 여러분들과 함께... 는 개뿔 한달 딱 지나면서 힘들어서 리더 못해먹겠더라. 매번 5시반 땡치면 귀신처럼 사라지는 인간들 쫓아 꺼꾸로 왓츠앱 메시지 날리고 카톡 날려서 그날 다 못한 업무 챙겨야 하는게 법인장이 된다는게, 그리고 혼자 야근한다는게 얼마나 고역인지 안해본 사람은 모른다.


"보스, 우리 제품 사이즈 중에 왜 직경 3.8mm하고 높이 9mm 제품이 없지?" " 야! 너 제품 카탈로그 제대로 들여다 보기나 한거냐? 모두 왜우거나 아니면 가지고 다니라고 했잖아? 영업사원이 제품도 모르면서 나가서 뭔소리를 하고 다니는 거야? 당장 집어치우고 오늘 그만 퇴근해라." "근데 나 아직 교육 제대로 받은게 없어서 이건 보스가 이해해 줘야지. 우리 제품군 가운데 직경 3.8하고 높이 9에 가장 가까운게 머지?" "그건 환자 구강 환경에 달렸지, 네가 맘대로 정하는게 아니니까 오늘은 그만 영업하고 집에 갈래?" "내가 지금 의사(고객) 앞에서 전화하는 거니까 대답해줘봐봐..."(이넘이 법인장을 협박하네...)"지금 누가 너의 라오방(중국어로 사장님)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거니? Don't play play lah~!(놀지말고 일하라는 싱가폴 슬랭)이번만 가르쳐 줄테니 그만하고 집에 들어가. 가장 가까운건 직경 3.5mm에 높이 8.5mm인데 그건 미니 사이즈이니까 impression coping은 4.0mm 짜리 써야하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로 간호사랑 중국어로 대화하며 웃는 소리가 들린다... "네 이넘 의사하고 상담하고 있다고 했으면서... 머야 라오방을 무슨 구글 서치 엔진으로 이용해 회사 제품 정보를 찾아가는... 내가 무슨 빌어먹을 네 비서인줄 아는지? 전화 끊는다!"


이런 빌어먹을 영업사원을 내가 왜 뽑았는지 지금와서야 후회하고 있으나 다른 기존 넘들은 이넘한테 눌린건지 아니면 원래 일하기 싫어하던 작태가 기존 법인장 이후 가장 잘알고 있는 내가 맡게 되어서 들켜서 그런건지 실적도 안내고 비리비리하고 있다.



아침에 이메일을 보고 있는데 넘이 뛰어들어 오면서 2만불 수금했고 의사하고 재계약에 성공했다고 내방에 뛰어 들어온다.

"너 지금 내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과금하기 시작해서 네 월급에서 내 시간당 급여만큼 제할거야. 잘 생각해보고 들어와~?"

"?"

"네가 어제 저녁 내게 전화해서 한 행태부터 소급 적용해서 내 시간을 뺏어서 영업해온거를 모두 네 실적에서 차감할 수도 있어. 여긴 학교가 아니고 개인이 한 행동에 책임을 지는 프로페셔널 회사라고. Welcome to the real World! 특히 싱가폴 처럼 돈으로 모든게 관리되는 사회는 참 나같은 사람이 생활하는데 편한거 같아!" 라면서 녀석의 심기를 비틀면서 누가 상사인지 되새겨 주려했...

"보스, 나한테 결과 가져오라고 했으면 먼저 받고나서 차감하던지 해야지, 이건 보고이고 트레이닝 세션이 아니니 내월급에서 까면 안돼!" 이 넘 말이나 못하면... 한대 후려 갈기고 싶으나 웃는 얼굴로 서있는 상판대기가 차마 성격상 그러지 못하게...

"그래서 그럼 보고해봐봐. 얼마 수금했고 계약서 어딧어? 내놔봐봐!" "수금은 크레딧 카드로 했고 여기 서명된 카피 있고..." "그건 영수증 작성해서 경리부 가져다 주고... 계약서는?" " 계약서는 서명은 했는데 조건을 이렇게 저렇게 수정하자고 별도 합의했고..." "야이 멍청아! 그말은 그 계약서는 아무 법적 효력이 없는 거잖아? 처음부터 다시이고 그말은 이번달 계약은 물건너 간거네. 한달여 작업한게 물거품이고 다음주면 그 의사 휴가라며. 몰디브 간다며? 너 몰디브까지 쫓아가서 계약서 합의하고 서명 받아올수 있어? 이번달 실적 물건너 간거구 너 계약실적은 꽝이야. 알아서 하던지 말던지 난 모르겠지만, 넌 또 내시간을 이런식으로 잡아먹으며 네넘 영업활동을 나한테 하고 있는건지 이해가 안돼. 네넘 덕분에 나는 이따가 또 야근을 해야하고 다른 애들 결재하고 트레이닝 시켜야 할것도 많은데 너땜시 벌써 몇분을 소비했는지 몰라. 일단 내방에서 나가라!" "하지만 보스?"

이제 멀라 나도, 여차하면 네넘하고 너한테 동조하거나 반대한 애들까지 몽땅 도매급으로 날려서 직원 모두 싹 물갈이 할 수도 있고 욕은 먹겠지만 능력도 안되는 애들로 내가 맨날 야근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못된 법인장 어쩌고 소리 나올지 몰라도 그거야 새로 뽑은 애들이 실적만 내준다면야 본사나 나나 상관할 바는 아니니.



이런 Everyday fire-fighting을 얼마나 더해야 할지 아직 가늠도 못하고 있으나, 하나하나 정리하며 만들어 가보는 일상을 조금씩 기록해 보고자 합니다. 에혀 내팔자야... 나이먹구 싱가폴에서 좀 편하게 지내나 했더니, 저 테XX 넘을 뽑은걸로 이런 개고생을 해야 될 줄은... ㅎㅎ


그래도 이런 코미디가 벌어지는게 다행이라 생각되고, 그나마 다른 인간덜은 불러서 면담하기 전에 무슨 이상한 메일이나 보내거나, 짤릴까 겁나서 잔뜩 찌푸린 얼굴로 들어오는데 나도 인간이다 보니 그런 상판대기 보는게 반갑지만은 않군요. 허나 대체 법인장인 내게 무슨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마디 보고를 하는 인간들도 없고 문제나 이슈들만 들이대는데 아무리 눈치빠른 나이지만, 이건 꺼꾸로 누가 누구 눈치를 보며 일하는 건지 모를... 에잇!



"보스, 2만불 수금한거 경리 가져다 줬다!" "영수증은 만들어 줬지?" "그거 다른 애들한테 물어서 해줬지, 걱정안해도 돼!" " 크레딧카드 머신 세틀먼트는 했니" "그게 먼뎅? 아, 잠깐... 맞아 그 전 세일즈가 나한테 주면서 머라머라 했던게... 그건가? 그거 지금 해서 조치할께. 걱정마라, 나두 이정도는 보스가 신경 안써도 알아서..." "..."



30분뒤.
"보스! 크레딧카드 머신이 동작을 안해!세틀먼트 메뉴가 안보여!" (에혀 저넘을 확 짤라?) "가져와봐!" "?" "여기 이거 누르고 이거 눌러서...

이렇게 하면.. " " 아! 여기서부턴 나 알아, 땡큐 보스! 다음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께!" "$500" "먼소리?" "이번에 네가 뺏은 내시간에 대한 비용이야, 이번달 월급에서 차감할거야. 고마워, 회사 비용을 이렇게 낭비(?)시켜줘서. 전체 회사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너같은 인재(?)로 회사가 발전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줘서 대단히 고마운데, 대신 내 시간당 비용은 네가 내 일을 해주지 않으니 그만큼 차감 할 수 밖에..." "에이 설마?" "불가능 할거라 생각해? 싱가폴은 근로 기준법도 없고 4대보험도 없고 퇴직금도 없어. 내가 법인장이고 싱가폴 고용법에 근거해서 회사 운영에 필요힌 방침이라고 생각되면 회사 정책 기준에 근거 집행 했을때 이를 막을 법적인 방법은 없거든." " 그건 불공평(unfair)하고 불합리(irrational)한데?" "You will see about that! 회사는 공정(fair)하긴하나 공평(even)하지 않은 곳이고, 합리적(rational)이긴 하나 명령(Chain of command)로 움직이지. 그리고 여긴 학교가 아냐! ㅋㅋㅋ" "보스, 농담이지?한번만 봐줘라!" "이번달 월급 나오면 알게 될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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