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기록이라면

by 파르테



조금 솔직하게, 꾸밈없이 써보고 싶었다.


나는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부정적인 사건들을 글로 꺼내왔다.

처음에는 마치 제삼자의 이야기를 하듯, 비교적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정리되고, 비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감당할 수 있는 거리감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이야기의 시점이 현재의 나와 가까워질수록

글쓰기는 점점 더 힘들어졌다.


이번 주제가 그러했다.


게으른건가,

지친건가,

질린건가?


스스로에게 이런저런질문을 던져봤다.


그래,시간이필요한가?


연재일을 한주 더 미뤄봤다.


상황은 달라지지않았다.


어렸을때라면 이런 내자신에게 실망하고 자존감이 내려갔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비슷한 과제를 이전과 동일하게 수행하지못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있는것이다.

그렇게 떠올린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정리된 감정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문장을 만드는 데 이전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그때 알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과거’가 되었지만,

이 기억은 아직 ‘현재의 연장선’에 있다는 걸.

정리된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몸과 감정이 반응하는 아픈 기억이라는 걸.

다시 떠올리는것자체가 외면하고싶을정도로 스스로에게 곤란한 일이었다.

마음도 더 거칠어지는것만 같았다.




아래는 이번에 써야하는 글의 제목이다.

프롤로그에 적어둔 내용이다.



5. 스물아홉, 반복되는 경험 (1.21.업로드 예정)

– 다른 결말


6. 〈세 자매들〉을 보았다 1 (1.22.업로드 예정)

– 같은 땅에서 나온 자매들



오늘은 22일이다.


스물아홉에 대한 내용은 가까운시점이라 더생생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드러내고 어디를 생략해야할지를 판단하는것부터 난관이었다.


그래서 멈췄다.


이 이야기를 쓰는 것이

나를 정리하는 일인지,

아니면 나를 더 소모시키는 일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쓰지 못하는 상태 자체를 쓰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그냥 잠수하듯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으나

그대신,

그 마음을 그대로 적어보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 도움이되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툭하면 숨어버리는 나에게 지쳐있었다.

내상태를 솔직히 고백하는것도 의미있는 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사건에 대한 기록이라기보다,

사건을 기록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기록이다.

지금의 나는 언젠가는 꼭쓰고싶은 이내용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자한다. 덮고싶은것은 아니다.


이건 해결의 글도 아니고,

극복의 기록도 아니고,

정리의 결론도 아니다.


그냥 지금의 상태에 대한 고백이다.


어쩌면 언젠가는

이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끝내 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과거시점이 그러했듯 덤덤히 풀어낼 날도 올것이라믿는다.


하지만 지금은

쓰지 못하는 이 상태를 숨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작가의 이전글5. 솔직하지않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