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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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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Jan 18. 2018

(1)히드로 공항에서의 날벼락

기타의 삶 두 번째, 영국

워킹홀리데이 제도를 이용해 영국에서 머물렀던 일년 반.

새로운 공간에서 낯선 일들을 겪으며 천천히 스며드는 여행인 듯 삶인 일상의 기록을 담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영국으로 떠나는 편도 한 장의 티켓만을 가지고서 말이다. 

지난 몇년간 수 없이 들락거렸던 이 곳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가 지금 이대로 대한민국을 떠난다면, 다시 한국 땅을 밟을 날이 올까? 우주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어딘가에서, 누군가로부터 떠나가는 사람의 머리 속은 우주와 같을까. 설렘 속 공허함, 기대감에 동행하는두려움, 미래에 대한 긍정과 씁쓸함이 겹쳐져 정작 본인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무슨 생각이 머리 속에 채워져 있었는지 수 일 지나고 돌이켜보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지금의 내 머리 속이 그렇다.


수속 창구와 검색대에서 시간이 소요될 것을 고려하여 여유 있게 공항에 왔다. 2년 전 독일에 갈 때 수화물이 초과되어 커다란 캐리어를 공항 한복판에서 열어 두고 많은 것들을 버려야 했던 기억을 되살려 수속 코너부터 찾았다. 항공권 가격과 트랜지트(Transit) 시간, 허용 수화물 용량을 고려하여 베이징에서 두 시간 정도를 대기하여 비행기를 갈아타는 항공편을 선택했다. 사실, 가격이 저렴했던 것도 중국항공을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공항 곳곳에 놓여 있는 전광판에 분명 탑승구 정보가 나와야 하는 내 항공편에 ‘Delayed’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움직이는 일정에 대기 시간이 짧으면 기다리는 번거로움이 없는 강점이 있음에도 종종 발생하는 항공편 결항 및 지연 문제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정으로 아예 바뀌는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내가 타고 가야 할 항공기의 엔진 정비가 지연되어 한 두 시간 안에 이륙이 불가한 상황이 발생했다. 나와 같은 여정으로 영국 런던에 가는 승객은 총 세 명이었는데, 두 명의 승무원 언니들이 여러 곳에 전화를 걸고 무전을 하고 나와 다른 두 명의 승객에게도 나에게 처럼 양해를 구했다. 이십 여 분을 심장이 쫄깃해지는 순간을 기다려 돌아온 결과는 달콤했다. 예정보다 두 어 시간을 앞당겨 도착지에 다다를 수 있는, 한국에서 영국 런던 히드로공항으로 출발하는 대한민국 국적기라니. 그것도 환승의 번거로움이 없는 직항이었다.


‘이렇게 좋은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는 구나.’

'이번 여정은 무언가 시작이 좋은걸.’




열한 시간 만에 대한민국을 떠나 영국 히드로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예정대로라면 한 밤 중에 도착하여 양 손으로 무거운 짐을 끌고 엘레베이터 하나 없는, 불편함으로는 악명이 높은 런던의 튜브(tube) 스테이션을 오르락 내리락 꽤나 고생했을 생각에 절로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3년 전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처음 출장으로 이 곳, 히드로 공항에서 영국 땅을 밟았던 기억이 어렴풋 떠올랐다. 영국 법인의 프로젝트 매니저를 삼촌이라며, 이름과 연락처를 대고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왔다는 둥의 괜한 거짓말을 둘러대며 십 여 분간 진땀을 뺐던 그 기억 말이다. 

 

영국에 오면서 드디어 행운의 여신을 만났던 걸까.

까다롭기로 유명한 히드로 공항의 입국 심사는 자국에서 허가 받은 비자(VISA)가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분 명 오후 5시에 도착했는데 6시가 넘도록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무리의 틈에서 휴대폰을 켰다. 이메일을 확인하던 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미리 연락이 닿아 런던에 도착해서 바로 머무를 방을 구해 두었는데, 집 주인이 사정이 생겨서 나에게 방을 내어줄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운이 좋더라니’
현진건의 ‘운수좋은날’이 떠올랐다.


막막함도 잠시였다. 

공항 와이파이를 이용하여 숙박 어플리케이션을 열고 당분간이라도 며칠을 머무를 곳을 찾았다. 우선짐이라도 풀고 몸이라도 뉘일 곳은 찾아야 하지 않나 싶어서였다. 이런 순간에 냉정하지 않으면 안되겠다싶었다. 그러면서 불현듯 머리 속을 스친 세 가지가 있었으니.


우선 웬만해서는 버틸 수 없는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와 언제 내가 방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불확실함, 그리고 아직 이 곳에서 직업이 없기에 생활비는 고스란히 날 숨만 내뱉는 내 통장에서 나갈 거라는 점이었다. ‘우선 삼 일 안에 뭐라도 찾아보자.’라는 생각에 하이드파크(Hyde Park)근처 호스텔에 예약을 했다.


 



런던에서 생활한지 두어 달이 지나고 나는 처음 이 곳에 올 때 공항에서 이메일 하나로 나를 당황시켰던 집주인의 사정을 알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아시아 인을 좋아하는 영국의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는 방을 내어주는 플랏 쉐어(Flat Sharing)를 매개로 나처럼 영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하려는 한국과 일본 등지의 여성들에게 자신과 함께살 것을 어필해왔다고 한다. 눈뜨고도 코 베이는 런던에서 말도 안되게 저렴한 방세를 미끼로 내걸고 남자친구금지, 방 문은 잠글 수 없음 등의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들을 함께 사는 조건으로 내건다니, 공항에서의 봉변이라고 생각했던 게 한 순간에 ‘액땜’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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