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브레이크를 밟지 말았어야 했나 보다. 멈춰 선 지 열 달이 되어가는데 여전히 달리는 것 같다. 아니 달리고 있어야 할 것처럼 적응이 안 된다. 불안하다. 나의 의지는 엔진이 고장 난 자동차 같다. "
지난해, 평생을 일했던 학교를 떠난 K에게서 온 문자다. 사직서를 낼 때만 해도 '쉼 없이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충분히 쉬어도 되고 그리할 거라고 장담했었다. 퇴직을 한 직후는 못해 본 일에 열정적이어서 처음엔 쉬는 것도 쉬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유학 중인 딸이 있는 영국도 다녀오고, 내쳐서 여러 나라의 도시와 자연이 담긴 여행사진을 보내왔다. 오늘은 2만보를 걸었다, 또 어떤 날은 2만 5 천보를 걸었다, 날마다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내왔다. 지난해는 마지막 일정으로 산티아고 순례까지 마쳤다. 바빠서 못한다던 성당 그룹 모임도 들었다고 했다. 그러던 K가 엔진이 고장 난 자동차처럼 시동도 걸리지 않는다는 문자를 연일 보내온다. 코로나 때문이다.
쉰다는 게 무엇인가? 쉴 자격 있다던 K는 쉬는 게 고통이 되었다고 했다. 코로나가 아니어도 퇴직은 활동반경을 줄인다. 관계가 줄어들고 혼자 지낼 시간은 는다. 관계가 힘든 사람이라 해도 강제 격리는 힘들게 한다. 활동적인 k가 얼마나 힘들지 짐작할 뿐이다.
코로나 전염병 문제가 뉴스에 나오기 시작했던 올해 초만 해도 이렇게 오래 격리생활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메르스 때처럼 두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심한다면 잘 지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조심하면 코로나에 감염돼 고통받는 사람들만의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학교에 못 가고, 나는 학습장에 못 가고, 형들은 성당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게 석 달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국내 확진환자가 0명인 날도 나왔다. 이대로 격리도 끝날 것 같았다. 그러나 기대로 끝나버린 것 같다. 5월 1일 노동절, 주말, 어린이날까지 흔히들 말하는 '황금연휴'를 잘못 쉰 결과 느슨했던 격리는 다시 죄라는 사회적 명령으로 바뀌었다. 세 번째 격리조치다. 일이 이리 되도록 코로나 파도를 몰고 온 사람들에게 K와 함께 문자로 화를 나누었다. 화는 내면 낼수록 상승한다. 두 사람의 화가 카톡방에서 활활 탔다.
문자로 주거니 받거니 특정 대상이 없이 '아무나'에게 마구 화를 내다 같이 웃고 말았다. 고작 나눈다는 문자가 화를 내는 것뿐이며,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래도 다 못하면 이따 저녁때 마저 통화하자고 했던 사람들이 문자로 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쯤이야 비대면을 지켜야 할 필요는 없을 텐데, 하지만 겁이 나는 건 사실이다. 내가 감염자 1번이 되어서는 안되었다. 날마다 출근해야 가족들이 있는데, 만일 내가 감염자가 된다면 나 하나로 해서 생길 파장이 상상만으로도 대책이 없는 짓이었다. '그러자, 정부 지침을 잘 듣자, 그게 돕는 길이다' 라며 낄낄거렸다.
이야기가 다른 데로 흘렀지만 K의 고민 지점은 내 것이기도 하다. 나에게 언택트 사회에 적응하기는 또 새로운 도전이다. 일찌기 자식에게 '구글 줌'으로 회의 했다는 말을 들어는 보았다. 그것을 나도 4월부터 사용하고 있다. 모두가 서툴다 보니 어수선하고 불편한 게 여럿이다. 성인 학습자들은 줌에 입장하는 시간이 들쓱날쑥들하다. 요청을 했지만 아무래도 느슨한 학습조직이다 보니 입장 시간을 정확히 지키라 강제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학습자들은 스피커를 끄고 듣는다. 까만 화면에서 나 혼자 말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양방향 대화가 어렵다. 공유할 학습자료 양이 많으면 화상 미팅만으로는 공유하기가 어려워 결국 단체 카페 등을 이용한다. 한 꼭지 수업을 위해 할 일이 많아졌다. 내게는 효과 대비 가용성이 떨어지는 일들이다.
나이는 자꾸 먹어가고, 배워야 할 것은 줄지 않고. 배워서 겨우 할 만한데 또 새로 배워야 할 게 생겨나고 하는 일상이다. 공부가 힘들다. 공부가 힘들다고 싸잡아 말할 수는 없고, 재미없는 것들을 공부해야 하는 게 스트레스다.
성인학습자들이 읽고 쓰고 하는 프로그램보다는 몸 쓰는 프로그램에 몰리는 게 같은 이유겠다는 걸 언택트 수업을 진행하며 실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