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5월 초순, 토요일 아침이다. 이 방에서는 서쪽으로 난 창으로 하늘이 보인다. 밖은 비가 내린다. 긴 봄 가뭄 끝이다. 돌풍을 동반한 비가 세차게 올 거라는 예보와 달리 가만가만 내린다. 현재까지의 강수량 11미리. 예보는 80미리를 내다보더니 밤새 내린 비가 땅 거죽을 적시는 정도다. 밖을 내다보지 않으면 비가 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고요하다.
아파트는 웬만해서는 창가에 가 서지 않으면 앉아서는 고작 하늘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여건이 된다면 앉아서도 나무며 새를 볼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 아쉬운 대로 창가로 다가서니 몇 해 전 심은 키가 부쩍 자란 참나무 우듬지가 보인다. 밀집해서 자라다 보니 가지를 치거나 등치를 불리기보다 키를 키우는 게 우선. 더 많은 햇빛을 찾아서 경쟁하듯 키를 키웠나 보다. 나무들은 올 들어 벌써 여러 차례 새 잎을 피워 올려 공원은 온통 초록 초록하다. 빗물을 머금은 나무들이 하룻밤 새 더 우거져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이 보이지 않는다.
참나무 곁에 선 은행나무 꼭대기에는 올해 새로 지은 까치집이 있다. 나뭇가지를 부지런히 는 물어오나 그중 절반은 바닥에 흘리니 어느 천 년에 집이 완성될까 싶더니, 집이 됐나 보다. 더 이상 나뭇가지를 물어 나르는 까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집짓기가 한창이던 어느 하루는 까치 소리가 예사롭지 않아 내다보니 짓고 있는 집 주위를 거칠게 날아다니며 우짖고 있었다. 칩입자가 있다. 어치였다. 둘 다 인가 근처에 사는, 알고 있기로는 둘 사이가 사촌이라는데. 어치를 산에 산다 해서 산까치라고도 불렸다. 그런 녀석이 도시로 내려와 불화를 일으키고 있다. 사람들 말로는 잔인하기로는 어치가 까치보다 한 수 위라고 한다. 나도 잔인한 어치를 본 적이 있다. 참새를 물어와 천연덕스럽게 깃털 뽑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새들의 생존 문제지만 어치 녀석의 행실이 징그러워 긴 나뭇가지로 쫓았더니 참새를 놓고 날아갔다. 어치에게 놓여난 참새가 한동안 움직임이 없어 그새 죽었나 걱정하며 들여다보니, 서너 번 푸드덕거리다 날아갔다. 이번엔 무슨 일로 까치와 한판 붙은 걸까. 남이 짓고 있는 집을 도둑질하려는 걸까. 한동안 그렇게 떠들썩하더니 어치 녀석이 저보다 몸집이 큰, 필사적으로 집을 지키려는(내가 보기엔 집 때문에 싸움이 난 것 같다) 까치를 이기지 못한 듯 먼저 날아갔다.
어치는 필요에 따라 울음소리를 달리 낼 줄 안다. 내가 본 바로만도 까치와 싸울 때의 찌를 듯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무엇 때문인지 고양이 울음소리도 내고, 저희들끼리 무리 지어 평화로워 보일 때는 ‘요이 요이’하며 제법 둥근 소리를 낸다. 다 제 살아가는 방식이라고는 하지만 필요하다면 온갖 삿된 방법이라도 가리지 않고 다 쓰는 것 이 영악스러운 인간을 닮았다.
근래 들어 집 근처에 새들이 더 많이 보인다. 드물게 보이던 직박구리, 동고비, 곤줄박이. 그중 어치가 특히 눈에 띄게 늘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던 텃새인 참새와 까치, 까마귀도 많아졌다. 집 주위에서 새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으니 좋은데, 간사하게도 꼭 기분이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코로나에 겁먹고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지 모르겠으나 숲에 살아야 할 것들이 도시로 내려와서 좋을 것은 없다. 내가 생각하는 평화란 제각각 제자리를 지키며 제 몫의 삶을 사는 거다. 새들은 새가 살 곳에 살아야 한다.
한편 비둘기는 좀 줄어든 것 같다. 88 올림픽이 열렸을 때, 행사 끝에 비둘기 날리는 퍼포먼스를 보면서 큰애는 저 새들은 어디로 가느냐고 걱정 섞인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어디서 가져왔고 어디로 날아가는지 알지 못했지만, 비둘기는 귀소본능이 있어 제 집으로 돌아간다고 기대를 담은 대답 했다. 그러나 내 기대와 달리 비둘기들은 돌아가지 않은 것 같다. 도시에 남아 살면서 유해조수로 취급받고, 과자 부르러기를 비둘기에게 주었다고 주지 말라는 먹이를 비둘기에게 주었다고 노인들 사이에 시비를 일으키기도 한다. 비둘기는 더 이상 평화의 상징이 아니다. 퇴치의 대상일 뿐이다. 인터넷에는 비둘기 퇴치법이라며 각종 아이디어가 실려 있다. 똥에는 질명을 일으키는 곰팡이균이 들어 있고, 날갯짓을 할 때는 이가 떨어진다며 사람들은 비둘기가 가까이 오는 것을 질색한다.
리스본에서 비둘기를 포획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동상이 있는 광장에 먹이를 뿌리자 수많은 비둘기들이 어디서 왔는지 날아들어 먹이를 쪼느라 정신없을 때 포획망을 던져 비둘기들을 잡았다. 어디선가 잡은 비둘기 포획망이 실려 있는 트럭에 새로 잡은 포획망을 아무렇게나 던져 싣고 떠났는데 어떻게 처리하는지 물어볼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불행한 결말일 거라는 짐작이 들어서였다. 비둘기 사이사이에 함께 먹이를 쪼던 다른 새들도 함께 포획당했는데, 그들은 억수로 운 나쁜 새가 되었을 것으로 상상한다. 비둘기 사이에서 그들을 골라낼 것 같지는 않다. 비둘기를 대하는 사람들의 이런저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쩌지도 못하면서 괜한 시비지심이 생긴다.
일기예보는 오늘 종일 비가 올 거라고 한다. 올봄 공원에 벚나무가 여러 그루 새로 이사 왔다. 옮겨 심은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자리를 잡지 못해 비들비들 말라가던 벚나무가 이 비로 생기를 찾았으면 좋겠다. 노랗게 날리던 송홧가루는 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