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때나 메르스 때도 겁나거나 초조하지 않았다.
정부 발표라고, 낙타고기 먹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미디어들이 알려 주어서 외려 웃을 수 있었다.
정부를 욕만 하면 되었다.
마스크를 안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스크를 하는 게 이상했다. 유난스럽다고들 했으니까.
그러니까 신종플루나 메르스 때,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맘 편히 지냈고,
모르는 사이 수백 명이 감염되고, 그중 수십 명이 죽었지만 역시 지금 같지는 않았다.
모르니까, 몰라도 됐으니까, 모른 채 맘 편히 지났다.
그때 미디어들은 그랬다.
코로나 19는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불안과 공포를 섞어 공중에서 뿌리는 것 같다.
몰라도 되는 일까지, 아니 불안한 소식만 모아서 보내는 것 같다.
정부가 하는 일은 모두 잘못되었다거나,
사람들이 먹거리를 사재기해서 마트가 텅텅 비었다거나,
거리에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 없는 유령도시가 되었다거나,
마스크 사려는 사람들이라며 끝이 안 보이게 늘어선 줄을 보여주거나,
감염 환자 수를 속보로 스마트폰 화면 상단에 띄워 중계를 한다거나,
청정지역이었던 어디가 또 뚫렸다거나,
한국인 혐오 국가가 어떻다느니 하면서,
아주 신이 났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불안하게 할까, 불안해서 생기는 소동들을 즐겨 보도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게,
어찌하면 사람들을 더 갈라 쳐서 서로를 의심하고, 불신하게 할 건가만 연구하는 거 같다.
그리하여 불신의 담장이 사람들의 키를 넘었다.
단톡방들마다 각종 정보는 왜 그리 넘쳐나는지.
어디서 가져왔는지, 코로나 정국에 도움이 되는 정보라며 참고하여 건강히 지내라는 문자와 함께 코로나 문자 사태가 날 지경. 길기는 또, 그것들을 다 읽으려면 '더보기'를 누르고
스크롤 올리는 수고를 해야 한다.
정보인지 아닌지는 놔두고, 그 많은 글과 그림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한 편 한 편 올라올 때마다 댓글 호응도 대단하다.
고마워요, 도움이 되겠어요, 참고할게요---.
나는 올라오는 걸 지우고만 있는데, 복장이 터질 것 같다.
나 빼고 다른 단톡방을 만들까 봐 설득도 하지 못하고.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몇십 년을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인데.
신천지, 그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지만 진짜 피해자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따져보기로 하고
나는 31번 환자가 원망스러워 죽겠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지옥으로 만든 자, 그대가 31번이니 원망 좀 들어도 싸다.
그들 때문에 강제로 봉인된 일상
나만 괜찮으면 괜찮은 게 아닌 일상이 흘러가고 있다.
어제로 나의 모든 강의는 취소되거나 연기 또는 불투명한 것이 되었다.
문자로 전화로, 속속 도착한 모든 일정 취소 연락.
프리랜서에게 무노동은 무임금이다.
이 얼떨떨한 재난에 나도 얼결에 휩쓸려버렸다.
책이나 읽자, 글이나 쓰자, 영화나 보자, 애써도 마음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애들 다 키워 제 몫의 삶을 잘 살고 있고, 내 몸뚱이 건강하니
참고 견디면 지나갈 테고,
월급쟁이들은 출근하면 월급은 나올 테니 그 또한 지나가겠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책임져야 하는 자영업자, 언제든 망할 수 있는 하루하루를 사는 이들은 어떡할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