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아래, 우리가 사는 도시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읽고

by 폴라리스

올해 17번째 책이지만, 이렇게까지 당황스러웠던 적은 처음입니다. 명색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의 한 권이라 묵직한 서사와 명확한 플룻이 있는 소설이겠거니 기대했죠. 그런데 왠걸, 이건 소설이라기보단 이케아 가구 카탈로그에 가까웠습니다. 수십 개의 가상 도시가 쉴 틈없이 나열되어 있었으니까요.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에게 도시를 설명하는 형식이지만, 정작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은 없습니다. 그저 한두 장 남짓한 짧은 도시 묘사가 끝나면 무심하게 다음 도시로 넘어가 버려서, 이게 정말 전부인가? 싶은 당혹감이 반복됩니다.


그래도 한 번 잡은 책은 악착같이 끝까지 읽는 편이라 완독은 했습니다. 호흡이 짧기도 하고 각 도시의 묘사가 감탄이 나올정도로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죠. 당장 게임이나 영화의 세계관으로 써도 충분할만큼 개성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떤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13세기 탐험가인 마르코 폴로가 소개하는 도시에서 아스팔트, 레이더, 비행기 같은 현대 문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오고 있었거든요.


이 기묘함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각 도시만 가상인게 아니라, 이 이야기 전체가 지금의 우리를 설명하는 가상의 이야기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현대의 일상이 오버랩되며 읽혀졌습니다.




작중의 마르코 폴로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을 낯선 시선으로 재조립하는데 능숙합니다. 가령 이런 느낌으로 말이죠.


“어떤 도시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지하로 스며듭니다. 놀라운 것은 이 사람들이 몇십 키로미터 떨어진 지상으로 나와서 제각각 다른 건물들로 들어간 뒤, 해가 진 다음에야 비로소 다시 바깥으로 나온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다시 지하로 들어간 뒤 아침에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죠. 정작 낮 동안은 텅 비어버리는 이 도시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곳 거주민들이 햇빛을 싫어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저자는 마르코 폴로의 입을 빌려, 이렇게 있을 법한 도시를 낯설게 표현하거나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도시를 꾸며대기도 합니다. 먼저 모든 걸 비정상적인 요소로 채우고 하나씩 정상적인 것으로 치환하면서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어딘가 존재할 것만 같은 그런 도시를 탄생시키는 거죠.


이 가상의 도시들은 온통 상징들로 가득합니다.


갈망하던 목적지에 도착한 여행자가 잃어버린 젊음을 한탄할 수 밖에 없는 도시

화려함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8시간씩 보석을 깎는 노예들이 있는 도시

인간관계가 피로해지면 다른 구역으로 누구도 모르게 이주할 수 있게 하는 도시.


이렇게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컨셉의 도시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서 상징을 되씹어봐야하는 도시들도 계속해서 소개됩니다.




이토록 상징으로 가득한 도시 이야기가 허구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쿠빌라이 칸은 이 기묘한 거짓말을 멈추지 않고 들었던 걸까요? 아니, 마르코 폴로는 왜 황제에게 지치지도 않고 이 가짜 세계들을 늘어놓았던 걸까요? 심지어 칸은 이미 자신의 제국이 조금식 썩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폴로에게 왜 꾸며낸 이야기를 하느냐고 다그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폴로의 이야기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완벽한 허구의 세계를 거울삼아,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의 결핍을 대면하게 합니다. 제국의 몰락을 직접 꼬집는 대신 가상의 도시를 소개한 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더 날카로운 그림자로 드러내려고 했던 걸지도 모릅니다. 황제에게 필요한 것은 무너져가는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희미하게 남아있는 행복의 흔적을 찾는 일이었을 테니까요.


황제는 끊임없이 이야기 속 상징들을 파악하고 소유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폴로는 경고합니다. 상징에 집착하는 순간, 그 상징의 일부로 박제되어 버린다고 말이죠.


현대의 흔한 욕망들은 비싼 외제차를 타야 성공한 것 같다던가, 서울 자가 아파트는 있어야 남부럽지 않다던가 라는 물질적 상징으로 대변됩니다. 하지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처럼, 그런 상징들을 손에 넣는다 한들 ‘나’라는 고유한 존재가 단단해지는건 아닙니다.




마르코 폴로의 고향은 베네치아였지만, 그는 칸에게 끝내 베네치아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세세하게 묘사하는 순간 고향에 대한 고유한 향수와 감정이 단어로 박제되어 옅어질까 두려웠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그가 말한 수많은 가공의 도시 속에 이미 베네치아의 파편들이 녹아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책에 등장하는 50여개의 가상의 도시들은 때로 허무맹랑하고, 때로 감탄이 나올만큼 매혹적입니다. 하지만 이 도시들이 공통적으로 함의하는 바는,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며 우리의 현실은 지옥과 닮아 있다는 점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에 존재하는 어떤 장소가 아닙니다. 지옥이 있다면 이미 이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것의 일부가 되어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방법 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계속 배워나가야 합니다.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대상을 찾아내고 구별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과 그런 상황이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 보이지 않는 도시들 중 -


이 책은 읽는 내내 선명한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결론 역시 앞선 도시를 모두 거쳐 온 여행자만이 오롯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불친절하고 난해한 가이드 북은 한 가지 질문만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상징으로 가득 찬 이 가짜 도시들 사이에서, 당신은 기어이 당신만의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낼 준비가 되었느냐고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 현실을 돌아봤다면,
이번에는 아직 오지 않은 이야기로 현실을 비춰보려 합니다.
일어나지 않았을 뿐, 충분히 가능한 세계를 통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