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자본주의자]를 읽고
『월든』이라는 책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3년 동안 홀로 숲속에서 자유를 누리는 삶을 다룬 책 말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하루와 돈의 제약에서 벗어난 모습은 많은 현대 직장인의 노스탤지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슷한 예로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있겠습니다.
사실 저는 『월든』을 읽어봤지만 좋은 인상으로 남지는 않았습니다. 자연에서 보낸 기간은 고작 3년이고, 그 생활도 오롯이 본인의 노력이 아니었음에도 쏟아지는 자연 예찬이라니요. 이 태도는 오히려 기묘한 위선으로 보이기까지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이 삐딱한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던 건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일단 <숲 속의 자본주의자>라는 제목부터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저자는 소로처럼 고결한 척하지도 않고, 스스로를 자본주의자라고 칭하며 숲의 공기와 세속의 논리를 합리적으로 수용합니다. 자연과 문명이라는 경계에서 적당한 타협을 하며 살아가는 저자의 태도는 생각보다 더 담백했습니다.
어쩌면 소로 역시 『월든』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절대적인 자연예찬론이 아니라, 자연에서 삶을 영위하려는 본인도 결국 타인의 도움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는 한계의 고백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생각이 들자 다시 한번 『월든』을 펼쳐보고 싶어졌습니다.
저자는 미국의 한 작은 시골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자의 삶은 21세기의 『월든』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TV, 커피, 술, 인터넷 없이 4인 가족이 사는 모습은 평범하지 않습니다. 책 발행 기준으로는 7년째 살고 있다고 하니, 단순히 절대적인 기간으로만 따지면 소로가 숲속에서 지낸 시간보다 더 길기도 하죠.
이런 선택들을 인생의 절대적인 정답처럼 이야기하지 않는 점이『월든』보다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이유는 야생동물의 간섭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서, 커피를 안 마시는 이유는 바쁘게 살지 않아서, 인터넷 없이 사는 이유도 비싸고 느려서. 거창하고 철학적인 사상에 기반한 결정이 아니라 본인 딴에서 정말 현실적인 이유라는 점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이런 저자의 태도에 의외의 위로를 받았던 건 제 삶의 루틴 역시 비슷한 결의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옥철에서 서평 글감을 정리하거나 책을 읽고, 주말에는 카페에 나와 글을 쓰고, AI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돌리는 컴팩트한 일상을 살고 있으니까요. 누군가는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느냐고 묻겠지만, 이것이 내가 내키는 대로 사는 방식이라면 저자의 이유와 마찬가지로 괜찮은 형태 아니겠습니까. 숲의 유유자적함과 컴팩트한 일상이 색깔은 다르지만 같은 붓으로 그린 셈이니까요.
숲속의 자연과 자본주의를 모두 인정하는 저자인 만큼 돈의 필요성과 효용성 또한 무시하지 않습니다. 돈과 행복이 정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행복의 하한선을 보장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니까요. 저자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투쟁을 하지 않고, 돈을 쓸 필요가 없는 환경을 선택합니다. 그렇게 돈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사용하며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자신에게 맞게 활용합니다.
저자처럼 돈이 필요하지 않은 환경을 선택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매일의 능동적인 자기 활동에 대한 보상으로 돈을 사용합니다. 운동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천 원, 이천 원씩 소소하게 저금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모인 돈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한없이 관대하게 나를 위해 소비합니다. 여행을 가거나 책을 사고, 게임을 사는 등 오롯이 자본주의의 산물을 즐기면서 말이죠.
저자는 『월든』의 문구들을 여러 차례 언급합니다. 그 중 바구니 장수의 일화가 강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어떤 마을에 돈 많은 변호사가 오자, 바구니 장수가 변호사에게 바구니를 사라고 요구합니다. 변호사가 거절하자, 바구니 장수는 당신은 돈도 있고 내가 애써서 바구니를 만들었는데 왜 거절하느냐고 화를 내죠.
바구니 장수의 행동을 '진상'이라 치부하기엔,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노력을 결제해달라며 생색내는 장수일지도 모른다는 서늘한 기분이 듭니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선물을 안겨주며 생색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성실히 일한 것을 남들이 몰라주면 혼자 토라지면서 괜히 섭섭해할 수도 있으니 말이죠.
바구니를 공들여 만드는 것까지만 자신의 몫이고, 그 바구니를 선택하는 건 타인의 몫입니다. 나의 노력이 타인의 인정이라는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섭섭해하는 순간, 삶은 타인에게 휘둘리는 비극이 됩니다. 바구니를 엮는 행위 자체가 나만의 유희가 되어야 할 텐데,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쩌면 그 가격표에 지나치게 내 자신을 투영하려 해서일지도 모르죠.
노력하지만 애쓰지 않기.
『요즘 사는 맛』이라는 책에서 임진아 작가가 점심 도시락을 싸면서 말한 표현입니다. 이 표현이 마음에 오래 남아 있었는데, 마침 이 책에 참 어울리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나를 알아내야 할 만큼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거창한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경주마처럼 달려가는 것도 좋겠지만, 그렇게 나아가다 지칠 바에야 내키는 방향으로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외면하고 싶었던 『월든』의 메시지이자, 나만의 바구니를 엮는 일이겠지요.
다음 책은?
숲속에서든 도시 한가운데서든,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나다움’이라는 것도, 막상 붙잡으려 하면 형태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마치 어딘가에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찾으려 하면 없는 도시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