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시를 읽는 다는 것

[은엉겅퀴]를 읽고

by 폴라리스

장르를 가리지 않는 독서를 지향하지만, 시집은 예외입니다. 소설이나 비문학은 저자가 말하는 이야기나 주장, 명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재미가 있지만 시집은 뭐랄까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어리둥절할 때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시티픽션이라는 단편집을 읽고 나서 시집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감각과 장면에 집중해야 하는 단편 소설을 읽으니, 지금이라면 시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마치 마음에 드는 미술 작품 앞에서 하염없이 머무를 수 있는 것처럼 시 하나를 붙잡고도 그럴 수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마침 사두고 안 읽은 시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연남동의 <서점 리스본>에서 ‘INFJ를 위한 책’이라고 꽁꽁 싸여 있어서 덜커덕 샀던 책. 그 책이 바로 라이너 쿤체의 <은엉겅퀴>였습니다.


여전히 시집 읽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보통 출퇴근길에 책을 읽는데, 지하철의 한계 용량을 시험하듯이 부대끼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시를 향유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텍스트의 분량은 길지 않다 보니 빨리 읽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야 하나라는 조바심까지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속도를 늦췄습니다. 일주일 동안 하루에 몇 편씩 천천히 읽었습니다.




라이너 쿤체, 이 독일인 할아버지 시의 특징은 매우 짧고 이미지가 명확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일상적인 어구를 사용합니다. (번역이 잘 되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간혹 어떤 시인들은 비일상적인 단어를 극한으로 사용해서 이세계를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줬었는데 말이죠.


대신 이 일상적인 표현들 때문에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어라 이게 끝인가 싶었거든요. 시집 안에 없었더라면, 혹은 그냥 줄글로 적혀 있었다면 별 생각 없이 지나쳤을 법한 텍스트들이 보였습니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백이 넓어서 그 행간에 무엇을 채워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고요.


다행히 이런 시의 모호함을 이전처럼 불평하지는 않았습니다. 어구 하나하나를 분석하며 정답을 찾으려 했던 수능 시절의 버릇이나, 의미를 알 수 없다고 투덜대던 예전의 태도 대신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여백을 억지로 채우려 하기보다 그 불친절함 자체를 인정하며 읽어 내려갔습니다.




문득 챗GPT에게 시에 대해서 물어보면 어떻게 설명해줄까 궁금했습니다. 내 감상이 맞는 방향일까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이 시집의 타이틀이기도 하고, 마음에 들었던 시 중 하나인 [은엉겅퀴]라는 시에 대해서 물어봤죠


「은엉겅퀴」에서 시인은 한 식물을 통해 존재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 식물은 뒤로 물러서 있고 땅에 몸을 낮추며 다른 이에게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다.
그러나 남들의 그림자 속에서도 은빛으로 빛난다.
이 시는 앞에 나서거나 다른 이를 가리지 않아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한다.
조용히 낮은 자리에서 살아가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겸손한 빛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다.


챗GPT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시를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해석을 읽는데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해석에 동의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꼭 스포일러를 당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소설이나 철학, 비문학 장르를 읽을 때는 AI가 나를 ‘도와준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시에 대해서만큼은 내 감상을 ‘뺏긴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슨 시험을 준비하는 입장도 아니니, 이런 식으로 시를 다가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AI에게 더는 묻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노래를 흥얼거릴 때 대단한 통찰이나 토론을 하려 들지 않는 것처럼, 시 또한 순전히 감상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하나 봅니다. 깊게 생각하거나 분석하지 않고, 시구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그저 즐기는 걸로 충분하겠지요.




제가 시집을 꺼려 했던 건, 어쩌면 이 감상의 순간들을 연속해서 붙잡아야한다는 부담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흐름이 끊기면 다시 시작하기 힘든 드라마를 보듯이, 어떻게든 숙제처럼 해치우려는 마음이 컸던 것이죠.


하지만 이제는 뭐 어떻습니까. 이제는 시에서 굳이 화자를 찾거나, 특정 색깔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골몰하거나, 같은 의미를 가진 시구를 찾아 밑줄을 긋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지하철의 소음 속에서 단 한 줄만 마음에 머무른다면, 그걸로 시의 역할은 다한 게 아닐까요.


AI가 알려주는 정답보다 나만의 서툰 감상이 어울리는 책이었습니다. 그저 하루에 한 두편씩 시를 즐기고, 그 시가 투영하는 나의 하루를 가볍게 곱씹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시를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 자연을 비유로 인간을 바라보던 시를 읽었으니,
이번에는 월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자연 속 삶을 다룬 이야기를 읽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