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픽션]을 읽고
단편 소설이 쓰기 더 어렵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짧은 분량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뜻이겠죠. 그래서일까요, 이 단편집에 실린 소설들이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좀처럼 붙잡히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전에 읽었던 『면도날』 같은, 장편 소설의 뚜렷한 기승전결이 가져다주는 안온함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단편을 하나씩 읽고 나서는 내용을 곰곰이 되씹어보기도 했습니다. 책 제목처럼 '도시'라는 주제와 연결 지어보기도 하고, 그동안 읽었던 비슷한 분위기의 책들을 떠올려보기도 했죠. 하지만 오래 씹는다고 소화가 잘 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서평을 의식해서, 메시지를 꼭 읽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건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책은 메시지를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스쳐 지나가는 감각을 받아들이는 편이 더 어울리는 책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각 단편은 우리가 도시에서 한 번쯤 경험해본 감각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바로 튀어나오는 기억이라든가, '아, 그럴 때가 있었지' 하며 한참을 더듬어야 떠오르는 순간들 말이죠.
부동산 가격에 일희일비하는 익숙함 (조남주, 「봄날아빠를 아세요?」)
소중한 공간의 공백에서 느끼는 상실감 (정용준, 「스노우」)
이따금 꿈꾸는 현실판 리틀 포레스트 (이주란, 「별일은 없고요?」)
버려진 것과 직면할 때의 묘한 쓸쓸함 (조수경, 「오후 5시, 한강은 불꽃놀이 중」)
반복적인 일상에서 겪는 소름 돋는 미시감 (임현, 「고요한 미래」)
당연한 시스템을 해제했을 때 남는 것 (정지돈, 「무한의 섬」)
같은 공간, 다른 시간을 사는 우리 (김초엽, 「캐빈 방정식」)
이 단편들에 대한 소감을 자세하게 써볼까 하다가, 이 책은 그런 기록 형태와는 어울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명확히 이해했는지 자신이 없기도 하지만, 그저 각 단편이 주는 이미지만 챙겨가도 충분하겠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문득 「스노우」에 등장하던 관광객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장편 소설을 읽는 태도는 어쩌면 그런 관광객의 시선에 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워 강렬한 기억을 남기려고 애쓰는 시선 말입니다. 반대로 단편 소설은 「별일은 없고요?」에 등장하는 소시민의 시선과 닮았습니다. 거주민에게 도시는 익숙한 듯 어색한 일상 그 자체로 충분한 것처럼요.
도시는 내가 읽는 속도보다 연재 속도가 훨씬 빠른 방대한 장편소설 같기도 합니다. 아니면 수많은 옴니버스 단편이 시도때도 없이 올라오는 웹소설 플랫폼이던가요. 마라톤이나 팝업 스토어 같은 활기찬 소식부터 재개발이나 예기치 못한 사고까지, 지금 이 순간에 도시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모두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내가 24시간 동안 겪은 일이나 주변 사람을 통해 건너듣는 이야기뿐이죠. 오늘 한 페이지를 겨우 읽어내는 동안, 도시는 벌써 수만 페이지의 새로운 사건들을 쏟아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수록작들이 툭 끊긴 듯한 ‘단편’의 장면들을 던져준 것은 도시를 묘사하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한 부분만을 두고 ‘도시는 이런 것이다’라고 성급하게 정의하다가는, 코끼리의 한 부분만을 만지고 판단한다는 옛 우화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니까요.
누군가 영화 취향을 물어볼 때면, 기분이 불편해지는 영화는 안 본다고 답했습니다. 마치 진흙탕에 빠졌던 채로 집까지 걸어가야만 하는 듯한 찝찝한 기분을 주는 영화들 말이죠. 예전에는 ‘나는 이런 영화도 만들 수 있다!’라는 감독의 자기자랑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듭니다. 그런 불편한 감정조차 우리 삶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을지도 모른다고요.
소설을 읽는 건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안전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꺼려했던 불편한 영화나, 이 일곱 개의 단편 속에서 마주한 낯설고 모호한 장면들이 당장은 당혹스럽지만, 덕분에 겪어보지 못한 도시의 또 다른 이면들을 멀찍이 엿볼 수 있는 기회인 셈이죠.
마지막 단편인 김초엽 작가의「캐빈 방정식」은 이런 저의 소감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도시(관람차)에 타고 있지만, 실은 저마다의 시간과 사연이 흐르는 독립된 방(캐빈)에 갇혀 살아갑니다.
다른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면 결국 내가 앉은 의자에서 일어나 옆 캐빈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독서와 이렇게 서투르게나마 남기는 글쓰기가, 닫힌 캐빈 속에 갇힌 나를 돌아보고 타인의 방을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단편 소설이라는 형식에 곰곰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니, 다음은 가장 압축된 문학. 시집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