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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Jun 11. 2023

안녕하세요, 멸종위기 재미교포입니다.

나는 미국에 산다. 미국에서 초, 중, 고, 대학교를 나왔고, 미국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올해로 미군 복무 10년 차다.


이렇게 나를 소개하면 왠지 한국말이 어눌하고 어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대신 하이파이브를 청할 것만 같지만 전혀 아니다. 영어보다 한국말이 편하고 예의도 바르다. 어쩌면 어릴 때 한국을 떠나기 전 학교에서 배운 마지막 한국식 매너가 어른께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것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미국에는 나 같은 사람도 살고 있는데, 이런 사람을 "재미교포"라고 한다.


재미교포의 뜻은 "미국에 정착하여 미국 국민으로 살고 있는 동포"인데, 여기서 "동포"란 같은 민족의 사람을 다정하게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민족"은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형성된 사회 집단을 뜻한다.


아무튼 아무리 영어가 유창하고 미국에 오래 살았다 해도 언어와 문화가 같은 사람들끼리는 결국 모이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형성된 재미교포 집단 중에는 교회가 있다.




교회에 가면 3종류의 사람이 있다. 이민 1세, 2세, 그리고 1.5세.


이민 1세는 성인이 되어 미국에 온 사람이다. 한국말이 영어보다 당연히 편하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면 영어를 할 때 악센트를 없앨 수가 없다. 미국에 살지만 평생 속시원히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민 2세는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1세와 반대로 한국어가 어렵다. 웬만한 가정교육을 받지 않거나 중간에 한국에 나가서 살고 오지 않는 이상 한국어가 어눌하다. 한국식당에서 한국어를 할 정도의 한국어는 구사한다. 세종대왕과 황희 정승 사이의 다이내믹이라던가,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 나오는 언어유희를 이들은 알지 못한다. 내가 지금까지 2세라고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익숙했던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이 형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대답했다. 어렸을 때 집에서 한국어를 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밥을 주시지 않았다고. 이 정도는 해야 한국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이민 2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5세가 있다. 1세와 2세의 중간에 낀 세대다. 이들은 1세가 보기에 일찍 미국에 와서 영어를 잘한다. 그리고 웬만하면 한국말도 잘 알아듣고 어른에 대한 예의도 바르니 1세가 무언가를 부탁하기에 가장 편하다. 하지만 2세처럼 영어가 유창하지도 못하고, 2세들처럼 미국 문화가 익숙하지도 않다. 어중간한 시기에 미국에 와서 영어도 완벽하게 하지 못하고, 한국에서 끝까지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고급 한국어를 구사하지도 못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2개 국어를 가장 잘 구사할 수 있는 사람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보니 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한 나라에 평생을 살아도 그 나라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완벽한 2중 언어라니. 그런 걸 언어유희라고 하나보다.




나는 1.5세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끝내고 1월에 미국에 왔다. 미국에 와보니 새로운 학기가 봄이 아니라 가을에 시작한다기에 초등학교 6학년을 한 학기 다니는 바람에 졸지에 미국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닌 사람이 되어 버렸다. 미국에서 초등학교까지 나왔다니 왠지 영어를 아무렇지 않게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무렇게나 한다.


사람이 생각을 언어로 하는 것이라면 나는 생각도 한국어로 한다. 머릿속으로 숫자를 셀 때도 일이삼사오륙 한국어로 센다. 휴가 때 편하게 읽을 책을 고르라면 90% 영어책보다는 한글책을 챙긴다. 가끔 '이번에는 영어책을 한 번 읽어볼까?'하고 영어책만 챙겼다간 결국 책은 안 보고 유튜브만 보게 되는 낭패를 겪는다. 기분이 울적할 땐 한국어로 글을 쓴다.




한국말이 편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기에 영어를 써야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정체성의 위기를 몇 번 겪는다. 한국에서 받은 공교육이라곤 초졸이 전부인 나는, 미국인의 국어인 영어를 배우며 언제부턴가 한국어로는 모르는 단어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답답했지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새로운 영어 단어 배우기도 힘든데 한국어까지 같이 알아야 할까? 한국에서의 학력은 초졸인데 굳이 성인 수준의 단어를 한국어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나와 비슷한 나이에 미국으로 온 친구들 중에는 한국어를 어눌하게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영어가 더 편한 그들은 미국인 친구들과 사이가 좋았고 학교 생활도 잘 즐기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살아갈 그들이 자신 나이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난 내가 그렇게 되는 것이 왠지 불편했다. 그때는 아직 국적이 한국인이어서였을까, 아니면 민족성을 지키고 싶어서였을까. 미국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영어 문장력이 부족한 건 어느 정도 괜찮아도, 혼자 글을 쓸 때 한국 맞춤법이 헷갈리는 건 왠지 창피했다. 어쩌면 미국인처럼 영어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 미국에서 나만의 고유한 강점을 갖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나와 같은 한국인이지만 영어가 유창하고 미국 문화권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며든 또래 아이들에 대한 질투였을까? 그 이유야 어쨌든 나는 미국 고등학교 1학년의 필수 도서인 『앵무새 죽이기』를 영어책의 두 배나 되는 돈을 주고 산 한글 번역본으로 읽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고등학교 때 읽는 『앵무새 죽이기』는 영어로 읽으나 한글로 읽으나 둘 다 재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정체성의 위기는 미군에 입대하고 나서 찾아왔다. 나는 미국 영주권이 나오고 입대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자 주저 없이 미군에 입대를 했다. 그런데 입대를 하고 동양인이라고는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인 동기 한 명 밖에 없었던 훈련소 이층 침대 이층에 누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미국과 한국은 다른 나라이고, 상황이 급변하면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한국인들과 싸워야 하나? 물론 쓸데없는 생각이다. 심지어 대한민국 국방부 홈페이지에는 "한ㆍ미 군사동맹의 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국방협력을 심화ㆍ확대해 나가겠습니다."라는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인사말도 있다. 세상 일은 모르는 거지만 미국과 대한민국 사이의 전쟁은, 적어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내 아이들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왠지 그때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입대 후 약 2년 뒤, 나는 장교가 되기로 마음먹고 학군단(ROTC) 교육 훈련을 받은 뒤 육군 장교로 임관했다. 임관을 하기 전, 교육 담당 장교였던 백인 소령은 외국에서 태어난 장교 후보생들을 불러 모았다. 소령은 다른 나라의 국적이 있으면 그 나라 국적을 포기해야 임관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때 나는 미국 시민이었지만 한국 국적이 살아있던 때였다. 임관을 하며 나는 영사관에 정식으로 한국 국적 포기 신청을 했고, 나는 법적으로 한국인에서 '한국계 미국인'이 되었다. 문득 기분이 이상했다. 미국 해군 최초의 동양 여성 포병 장교였던 (안창호 선생의 딸) 안수산 여사도 장교로 임관할 때 비슷한 기분을 느꼈을까? 아니면 그분은 미국에서 태어난 2세이니 나와 같은 고민은 없으셨으려나?




학창 시절에 1.5세가 한국교회에 가면 예쁨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2세 자녀가 있는 부모님들이 보기에는 우리 아이와는 다르게 한국말도 잘해서 말도 잘 통하고, 아직은 한국 정서라 어른에게 예의도 바르니 예쁠 만도 하다. 한국말도 잘하고 어릴 때 미국에 왔으니 영어도 유창하게 할 테고, 앞으로 완벽한 이중언어로 앞길이 창창한 유망주일 것만 같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미국에 살긴 하지만 서로 한국말이 통하는 1.5세 한국인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영어는 유창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대학을 가고 취업할 시기가 되면 인터뷰를 통과할 만큼의 영어는 되지만 취업 후 미국인 직장동료들과 즐거운 스몰토크의 할 정도의 문화권에는 속하지 못한다. 그렇게 미국 사회에서 점점 외로운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도 교회에 가면 나와 같은 1.5세의 고충을 겪는 비슷한 사람들이 있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한국 문화나 언어를 한국 드라마나 한국 음식 정도밖에 모르는 2세를 만나면 괜히 그래도 나는 "한국계"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냈다는 위안을 얻기도 한다.




최근 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자신의 비전을 발표했다. 이민 1세가 주류인 교회에서 이제 주도권을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겠다는 가슴 벅찬 선언이었다. 미국에 있는 한국교회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대형교회가 이런 선언이라니. 젊은이들에게는 환영받을 결정이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이민 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일군 1세대 어른들에게는 조금 섭섭할 수는 있는 일이었다.


변화의 시작으로는 일요일 프라임타임 11시 예배를 다음 세대에게 양보하겠다고 발표했다 (일요일에 여러 번 예배를 드리는 교회에서 11시 예배는 프라임타임이다). 앞으로 11시 예배는 다음 세대 젊은이들이 원하는 형식으로 진행될 것이니 다음 세대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어른들은 죄송하지만 다른 시간 예배에 참석해 달라고 했다. 꽤나 파격적이 발표였다.


그런데 이 가슴 벅찬 발표 후 이어지는 설명을 들은 후, 나는 좀 실망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는데 섭섭했다.


목사님이 정의하는 다음 세대는 나처럼 교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비교적) 젊은 사람이 아니라 "영어권"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1세대의 자녀들인 2세들은 한국어를 못하는 사람들이니 다음 세대가 영어권이라는 것은 당연한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 한국교회에서도 영어를 못하면 젊어도 다음세대에 속하지도 못한다니. 이건 조금 섭섭한 일이었다.


물론 다음세대를 영어가 편한 사람들과 동일시하는 말을 듣고 섭섭했던 사람은 유독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1.5세 사람들도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그 말에 수긍을 했다. 이제 자신의 아이들은 영어가 더 편한 2세가 될 것이므로.




라이거라는 슬픈 동물이 있다. 동물의 왕 사자와 정글의 왕 호랑이를 교배해서 태어난 동물이다. 그런데 라이거 끼리는 라이거를 낳지 못한다. 다시 사자와 호랑이의 교배가 필요하다.


어쩌면 1.5세 재미교포는 라이거와 비슷한 처지일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떨어져 나와 미국에 심겨 한국과 미국이 적절히 섞인 재미교포가 되었는데, 미국에서는 자신들처럼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가진 2세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들의 2세는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잊어가고, 한국과 미국의 적절한 조합은 한 세대에서 끊어져 버린다. 한국의 민족성이 적절히 섞인 재미교포가 만들어지려면 다시 이민이라는 교배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제 아내와 나도 2세를 생각할 나이가 되었다. 우리는 과연 미국에서 우리처럼 한국 언어와 문화를 소유한 아이들을 길러낼 수 있을까? 그 아이들도 자라서 한국 민족의 정체성을 소유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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