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장 1-8절
2025년 1월 1일 수요일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지음받았으며 그분 없이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분 안에는 생명이 있었습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추고 있지만 어둠은 그 빛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요한이었습니다. 요한은 그 빛에 관해 증거하러 온 증인이었는데 이는 그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 자신은 그 빛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만 그 빛에 대해 증거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 우리말성경]
요한복음은 성경에 등장하는 복음서(예수의 생애와 교훈을 기록한 네 가지 성서) 중 한 권입니다. 예수님의 12명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사도 요한이 1세기 말엽쯤(최소 A.D. 70년 이후, A.D. 96년 이전에) 현 튀르키예의 소아시아 반도 서쪽 기슭 이즈미르 남쪽에 위치한 에베소에서 기록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요한복음은 "말씀"이라는 존재의 언급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말씀"의 원어 그리스어 "로고스"는 당시 그리스 철학에서 "우주를 지배하는 궁극적 원리"를 뜻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로고스"란(말씀은) 하나님의 창조 능력이자 이 세상을 질서 있게 다스리는 존재입니다.
요한복음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태초"에 계셨다고 말합니다.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도 "태초"라는 단어로 시작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 개역개정]
창세기의 "태초"는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던 때를 의미합니다. 창세기의 태초에 우리가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의 태초는 창세기의 태초와는 의미가 다릅니다. 창세기의 태초가 시간과 공간이 생겨난 우주 창조의 시점이라면,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는 우주 창조 이전의 "영원"입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습니다.
2절에는 "하나님"이 두 번 언급됩니다. 하지만 그리스 원어를 깊이 살펴보면 각 하나님은 다른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삼위일체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을 정리해 놓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삼위일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신성은 통일된 것이어서 한 실체와 권세와 영원성을 지니신 세 위격이 계신다. 즉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시다. 아버지는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으시며, 누구에게서 나거나 나오지 않으셨고,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영원히 나셨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영원히 나오셨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장 3항 (미국장로교(PCUSA) 2017년 번역본)]
설명이 꽤나 어렵습니다. 삼위일체는 성경이 가르치는 신비한 개념입니다. 셋이 하나이고 하나가 셋이라는 말인데, 셋인 것은 위격(person)이고 하나인 것은 신성(Godhead)입니다.
요한복음 1장 2절에서 말씀(성자 하나님)이 함께 계셨던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첫 번째 위격(person)인 성부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습니다."라는 부분에서의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통일된 신성(Godhead)입니다.
즉,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신성을 가진 말씀이(예수 그리스도가)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뜻입니다.
또한 "함께"라는 단어의 원어 뜻은 단순한 공존이 아닌 친밀하고 역동적인 관계, 적극적이고 대면적인 교제를 의미합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지음받았으며 그분 없이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우주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지음받았(창조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언급된 "모든 것"은 창세기 창조 사건 당시에 만들어진 것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어 원문의 "모든 것"이란 창세기 천지창조 사건이나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하던 당시에 존재하던 우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에 존재하는 온 우주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분 안에는 생명이 있었습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그분"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여기서 생명이란 단지 숨이 붙어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숨이 멎어 육체가 죽고 난 후에도 누릴 영원한 생명(영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영원한 생명이 있는 이유는, 육체가 죽은 후 부활하여 영원토록 살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돼야 하는데,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누구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굳이 죽고 난 후 부활해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싶지 않다. 현생으로 만족하고 죽은 후에는 없어져도 괜찮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부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도 부활합니다. 부활 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은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서 영원한 죽음으로 떨어집니다. 즉, 모든 인간은 죽은 후에도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데, 어떤 상태(생명 혹은 죽음으)로 존재할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결정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은, 마치 어두운 동굴에서 헤매는 사람에게 비추는 한 줄기 빛처럼, 인간을 구원할 빛입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추고 있지만 어둠은 그 빛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둠은 이 세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빛이 이 세상의 비추었지만,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를 단지 공자나 석가모니 같은 4대 성인으로만 인식할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부터 존재했고 모든 것을 창조했으며,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요한이었습니다. 요한은 그 빛에 관해 증거하러 온 증인이었는데 이는 그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 자신은 그 빛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만 그 빛에 대해 증거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언급된 후에 세례 요한이 등장합니다.
세례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과는 다른 인물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자신을 3인칭으로 "요한"이라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극찬을 들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 그 누구도 세례자 요한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없다.
[마태복음 11장 11절, 쉬운성경]
하지만 아무리 예수님도 인정했던 위대한 세례자 요한일지라도, 그는 "빛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도록 증거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빛이 아니었다는 성경의 정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인간은 아무리 위대해도 빛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떤 목사나 종교지도자도 예수 그리스도 같은 빛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최대 성과는 단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 뿐입니다.
앞으로 3개월간(2025년 1-3월) 연재될 요한복음 매거진은 두란노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QT교재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돕기 위해 매일 발행됩니다. 글 작성을 위해 목회자를 위한 「생명의 삶 +PLUS」 및 다수 주석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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