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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Nov 25. 2023

기자가 된 인턴들의 저녁

밥을 먹든 어딜 가든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이 습관은 기자를 그만 둬야 없어질까 싶기도 하다. Paul 제공

얼마 전 언론사 인턴을 같이 했던 기자 A를 만난 바 있다. 최근 회사를 옮기기 전 얼굴을 마주했었는데 그때가 벌써 2년 전이었다. 그동안 만나자 약속은 여러번 했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당장 몇시간 뒤 일정도 예상치 못하는 이 직업을 가진 덕분이었다. 이번 만남도 몇번의 조정을 거친 끝에 이뤄졌다. 그나마도 A에게 뒤늦은 마감 요청이 온 탓에 제 시간에 만나지 못했다.


출입처 혹은 선후배들과 밥을 먹으면 당연히 술을 마실테니 이날은 피자집이라는 나름 고상한 장소를 골랐다. 먼저 도착해 메뉴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을 찰나에 A가 들어왔고 이내 나온 음식들을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퇴근했으면 일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끊임없이 울리는 휴대전화 알림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인턴 때 우리와 함께 일했던 선배들 근황을 나눴다. 다들 이직하거나 기자가 아닌 새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젠가 현장에서 만나 반가웠다는 소회도 들을 수 있었다. 막연하게 생각하고 바랬던 직업이었는데 이제 어엿한 N년차로 접어들었다니. 지나가는 세월 만큼 기자로 무언가를 해가고 있다는 점이 새삼 묘한 기분을 들게 했다.


돌이켜 보면 인턴 시절 참 순수하게 일했던 것 같다. 좋은 취재를 위해 전화라도 한번 더 하고 다음날 발제를 위해 카페에서 머리를 쥐어 뜯었다. 네 기사는 기사가 아니라는 데스크의 지적을 들었을 땐 쥐구멍에 숨고 싶기도 했다. 이 시간들이 지나면 회사 이름이 박힌 출입증이 아닌 얼굴이 들어간 사원증을 목에 걸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은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돼 줬다.


지금 열심히 일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사원증을 주머니에 꾸깃거리고 다니는 걸 보면 이때와 달라지긴 했다 느낀다. 눈빛을 반짝거리며 거침없이 뿜어내던 열정도 조금은 식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사람이 한결 같을 수 있겠냐만은 옛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니 그런 시절도 있었구나 아득해진 과거가 그리워지던 순간이었다.


자리를 파하며 다시 언제 만날까 약속을 잡지 않았다. 기회가 된다면 같은 현장에서 만나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웃으며 박수치는 일보다 한숨 퍽퍽 쉬어가며 분노의 타자를 치는 날이 더 많은 이 직업 아니겠는가. 그 가운데 출고한 기사로 조금의 변화가 생길 때 뿌듯한 안도감을 남몰래 삼킬 수 있다면 그걸로 책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우리. 어쩌다 이 길로 들어섰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잠자코 계속 펜대를 굴리는 거 보면 어디가서 기자라고 불리는 게 아직까진 좋은가 보다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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