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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Dec 08. 2023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버지 사랑

지난 월요일 새벽 엘리베이터가 안됐을 당시 모습. 혹시나 모를 증거 보전을 위해 촬영을 한 나는 천상 이 직업인이면서 손으로 느껴지는 분노를 공유해본다. Paul 제공

지난 월요일 새벽 갑자기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와 잠에서 깼다. 동생이 복통을 호소한다는 것이었다. 경황이 없으신 부모님을 대신해 재빨리 119에 전화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원들이 아파트에 도착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잘 작동하던 엘리베이터가 이날 새벽 고장났다. 하는 수 없이 난 동생을 업고 계단을 이용해 1층까지 이동했다.


아버지가 구급차에 탑승해 병원으로 향했고 난 차를 이용해 뒤따랐다. 이후 인근 병원에 도착했는데 보호자는 1명만 들어갈 수 있는 탓에 난 밖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순간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리곤 한동안 간절하게 기도했다. 원하는 꿈을 위해 아직도 공부를 하고 있는 동생을 지켜달라고 말이다. 동생이 그동안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았었는데 그게 화근이 돼 이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다행히 수액을 맞고 약을 처방받은 뒤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상황이 발생했던 때가 새벽 2시 30분쯤이었고 다시 복귀한 시간이 새벽 6시쯤이었다. 이날 하루는 물론이고 여러날 동안 피곤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일이 있던 다음날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아버지가 아직 오시지 않은 걸 발견했다. 이에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물으니 야근을 하신단다. 감사 등을 위해 이따금씩 야근을 하시지만 이외엔 어떠한 야근도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였다. 그런데 갑자기 웬 야근이지 싶었다.


그 이유는 아버지 퇴근 무렵 어머니에게로 걸려온 전화를 통해 알게 됐다. 이제 퇴근을 한다는 아버지는 "딸 데리고 갈게"라고 하셨다. 동생이 대학원 수업을 끝나는 시간에 맞춰 일을 하셨던 것이다. 이 다음날에도 아버지의 야근은 이어졌다. 일이 절대 많아서가 아니었다. 퇴근을 알리는 전화에는 항상 "딸 데리고 갈게"란 말을 덧붙이셨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회사에서 동생 학교까지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족히 30분은 잡아야 한다. 해당 시간이면 회사에서 집까지 오기에 충분한 거리였다. 그럼에도 굳이 학교까지 간 다음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오는 건 어떻게 보면 너무 소모적인 일 아닌가. 동생이 그 뒤로 아팠던 것도 아니다. 혹시나 딸이 다시 아플까 걱정하는 아버지의 사랑이 가득 담긴 조건없는 행동이었다.


이 일이 있기 전 주말 가족끼리 외식을 한 바 있다. 내가 가자고 했으니 당연히 계산도 내 몫이라고 생각해 가족들이 밥을 다 먹기 전 잠시 나와 계산을 마쳤다. 이후 식사가 끝난 어머니는 자신의 카드로 계산을 하려고 하셨다. 어머니께선 "지난번 아버지 식사도 네가 샀으니 이번엔 내가 사려고 했다"고 하셨다. 그럼 다시 환불하자고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맛있게 먹었다는 가족을 보니 그 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지긋지긋한 일상을 살고 있지만 그 평범한 일상 속 이같은 감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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