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이 지났을 때, 오늘의 난 여전히 젊지

by Paul
기자란 자고로 카라가 있는 옷을 반드시 입어야하기 때문인데 살기 위해서 일을 한다기 보단 이제 일을 하기 위해서 나의 모든 걸 맞추는 기분이다. Paul 제공

요즘 홍보 담당자들을 많이 만나러 다닌다. 지금 부서는 발제를 해도 되지 않아서 딱히 만날 필요성은 없지만 그래서인지 더 부담없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취재를 할 땐 그냥 평범한 식사자리 같아도 경찰이나 검찰과 만나면 그 자리가 파한 뒤 자리를 함께한 선후배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복기를 해야 한다. 당연히 그 가운데 단독이 될 만한 이야깃거리가 나오면 좋은 것이고. 그래서 기자들과 나누는 대화는 사실은 의도된 질문이 은연중에 깔리게 된다.


기자가 되고 처음 홍보 담당자랑 밥을 먹을 땐 그저 유수 기업의 사람과 맛좋은 음식을 먹으니 좋기만 했다. 밥을 먹으러 나와서까지 굳이 그렇게 심각해야 하나라며 선배들의 모습을 탐탁찮게 여겼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웬걸, 최근 내 모습을 보니 관련 부서에 없어도 사람들을 만나면 어쨌든 회사가 혹은 출입 부서가 알면 좋을 만한 정보를 은근히 캐내려고 하고 있었다. 나도 이제 정말 완연한 기자가 다 된 것일까.


이럴 때 적잖은 고민이 든다. 직업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나로선 기자가 썩 맞지 않아야함을 삶으로 증명해야 하는데 이같은 순간들이 있을 때면 배운 도둑질이 너무 익숙해져 버린 걸까 싶기도 하다. 물론 도둑질이 적성에 맞느냐는 다른 문제겠지만 익숙해졌다는 건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셈이니 후배들에게 선배란 호칭을 듣고 있을 만큼은 하고 있단 것 아니겠는가. 그동안을 돌아보면 이걸 쿨하게 던져버릴 순 없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서른 중반을 향해 가면서 어쩌면 지금이 무언가의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는 타이밍이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모든 것엔 다 때가 있는 법인데 어른들에게 아직도 '넌 어리다'란 말을 듣고 있으니 한번쯤 철없는 도전을 시도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다 때가 있는 법이니 학부시절에 뭐했냐고 한다면 참 아이러니하다.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누구보다 부단히 나아왔는데, 돌아보니 또 다른 선택이 있었단 아쉬움이 들정도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시절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어떤 후회가 남는 걸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 조차 몰라 아쉬움 조차 들지 않는 걸까.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제일 행복하게 살아가는 듯 하기도 하다. 얌전히 있지 않고 또 다시 사부작거릴 생각을 하니 만족할 줄 모르고 받은 감사들을 세어보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에 그렇다. 내가 뭐 대단히 능력이 뛰어나 줄곧 1등을 해온 건 아니지만 적어도 소기의 성과를 이뤄내봤으니, 더 하면 또 다른 게 쥐어지지 않을까, 이것보다 더 나은 게 있지 않을까 짱구를 쉬지 않고 굴리는 것 같다.


가령 이런 예시를 한가지 더 들겠다. 학부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항상 책과 노트북에 얼굴을 파묻어 지냈다. 어쨌든 글로 밥벌이를 하겠다고 다짐했으니 어떻든 무작정 글을 계속 써야하지 않나. 미팅 한번 하지 않(못)았고 과 동기들과 룰루랄라 낭만있는 대학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 결과 학과에서 졸업 전 취업을 했다. 선택을 했기에 얻어낸 것이었다. 그런데 욕심 많게도 요즘 대학시절을 왜 그렇게 낭만있게 보내지 못했을까 아쉬움을 토로하곤 한다. 모두 다 가질 수 없는데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구 곱씹는 거다.


혹자는 내게 감사할줄 모른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충분한데 더 다른 걸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현실이 평범하니 자꾸 딴 생각을 하게 되는 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조금만 바꿔 생각해보면 전반전이 끝나갈 즈음 후반전을 준비하기에 앞서 맞이한 인터미션에서 골똘히 고민할 수 있지 않겠나. 이 전략이 맞을지, 다른 선택이 있다면 그것을 끌어낼 수 있다면 후반전을 새롭고 알차게 채워갈 수 있지 않을까란 그런 종류 말이다.


선택은 언제나 나의 몫이고 결과에 따른 많은 것도 온전히 내 책임이다. 명확한 건 고민만 하면서 어쩌지 어쩌지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많이 흘러가 있을 거란 거다. 늘 정답만 찾아갈 수 있겠나. 사실 정답이란 것도 꽤 주관적이다. 누가 그 정답을 정의할 수 있단 말인가. 서른 중반을 바라보니 하루 빨리 결혼식을 해야 한다는 건 도대체 누가 정한 당연함인건지 말이다. 내 삶은 내 것이고 방향성과 모습도 내가 꾸려갈 수 있는 거다. 무모하리만치 마구 도전했던 이십대를 쫓을 순 없겠지만 지금보다 수년이 지났을 때 2026년의 난 여전히 무척 젊었을거다 회상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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