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무사한 직장인이 목표가 됐을까

by Paul
여행지 호텔에 도착하면 짐을 두고 곧바로 나가야겠지만 이번 여행에선 짐을 푼 뒤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봤다. 참 편안한 즐거움이었다. Paul 제공

말도 안 되는 격무에 시달리며 몸이 망가져가고 있을 즈음 단비 같은 휴가를 떠날 수 있게 됐다. 다가오는 2월에 아주 큰 행사들이 잇따라 있어 별 수 없이 1월에 몰아서 휴가를 다녀오라는 부장의 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보통 휴가를 떠나면 무조건 스카이스캐너를 열지만 이번 만큼은 국내로 눈길을 돌렸다. 꼭두새벽부터 비행기를 탈 자신이 없다는 건 핑계고 그냥 국내로 가보면 어떨까 싶어서였다.


아주 편리하게 KTX나 SRT를 타면 되지만 그냥 차를 가져가기로 했다. 족히 4시간은 넘는 거리를 운전하면 몸이 피곤하겠지만 직장을 다니며 그동안 빨리빨리를 강조하며 살지 않았나. 명색이 휴가인데 정해진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시간을 확인하며 이동하고 싶진 않았다. 내비에 설정해뒀던 도착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나는 대로 그 여유를 즐겨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도 여행지의 시간을 오롯이 느끼고 싶어서 오전 9시쯤 출발했고 오후 1시가 다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이후 일정은 특별하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호텔 체크인을 한 뒤 쉬었다. 호텔에 있는 헬스장으로 가 러닝머신을 막 뛰기도 했고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산책을 했다. 맛집을 검색해서 가기도 했지만 호텔 밑에 있는 뷔페에서 근사한 한끼를 먹어보기도 했다. 딱히 늦잠은 자지 않았다.


내가 여행지에서 한 것들은 어쩌면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시간을 보낼 거 그냥 집에서 해도 되지 않냐, 여행지에 갔는데 적어도 무언가 특별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 말할 수도 있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휴가니 그런 아쉬움이 들 수도 있다. 평일에 퇴근하고 올 수 있는 카페에 앉아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포함해서 말이다.


여행지의 한 카페에서 짝궁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우리가 잘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 어쩌다보니 잘 풀려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하루하루를 돌아봤을 때 과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고민이 된다는 거였다. 당연히 직장생활을 하는 게 마냥 즐거울 수 있을까, 30대인 우린 그 정도는 안다. 우리의 요점은 이런 거였다. 우리가 원하는 삶이었을까란 거다.


나는 학부 때 어학연수를 1년 가량 다녀왔고 짝궁은 유럽에서 대학을 다녔다. 한국을 떠나 넓은 세상을 경험해본 우리가 늘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언급한대로 세상은 정말 넓고 살아가는 모양새는 다채롭다는 거다. 짝궁도 학부시절 다양한 도전을 많이 했지만 나 역시 짧지 않은 1년이란 시간 동안 비영리 취재팀을 만드는 등 하고 싶은 도전에 두려움을 마다하지 않은 바 있다.


그런데 취업을 하고 연차가 쌓인 뒤 몇번의 이직 끝에 얻어낸 지금의 직장이 우리를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그렇게 바뀐 거다. 어떻게 들어간 직장인데 그만두게 되면 다가올 현실적인 문제들이 더이상 도전을 마다하지 않던 용기를 발휘하지 못하게 했다. 숨길 수 있을 만큼 꼭 꼭 숨겨야 정년까지 무난하게 마무리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갔고 시들어갔다. 우리의 삶을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직장에 필요한 부품으로서 모든 걸 맞춰갔기 때문이다. 어느새 1년이나 한달은 고사하고 오늘 하루의 목표는 일을 무탈하게 마무리하는 게 됐다. 그리고 잔뜩 소진된 뒤 퇴근하면 다음 출근을 기다리기 위해 알람을 맞추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나.


아까 집을 나서기 전 점심을 먹으며 넷플릭스에서 ‘첫입에 반하다’란 드라마를 봤다. 줄거리는 꽤나 오글거리는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인데 이것보다 눈길이 가는 점이 있었다. 인적이 드문 거리에서 오후쯤 맞이할 수 있는 따사로운 햇빛이 그들을 비추는 장면이었는데 참 부러운 청춘의 모습이다 싶었다. 누구나 지나왔고 나도 그런데 나는 그때를 즐기며 살았나 싶어서였다.


즐기는 게 꼭 뭐 특별함이 있어야 하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채우고 싶은 대로 그 시간을 썼을까 돌아보게 됐다. 기억나는 건 제대로 즐기지 못했고 취업을 위해 인턴을 하던 회사에서 혹은 자소서를 썼던 방에서 시간 대부분을 보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선택 뒤에 지금의 삶이 주어진 것이겠지만 말이다. 인간은 참 간사하고 교활하다는 걸 지금도 느낀다.


웃긴 이야기지만 이따금씩 뉴스나 유튜브에서 ‘삼성을 포기하고 도전을 한 ㅇㅇㅇ’란 헤드라인을 마주하게 된다. 평가는 두가지다. 어떻게 그런 선택을 했느냐는 박수와 이상만 갖고 뛰쳐나가면 현실의 냉혹함만이 기다리고 있고 나가면 이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는 손가락질이다. 내 스스로는 겉으로 전자의 가면을 쓰고선 속으로 후자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던 것 같다.


시간은 오늘도 어김없이 흘러간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이 하루를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 하루가 모여 1년이 되고 5년이 되며 쌓여간다. 꼭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는 게 정답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모하리만치 버거운 도전을 시작했다고 해서 청춘을 값지게 사는 것도 아니다. 무얼하든 그 모든 건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는 거고 그걸 안다면 우리가 주저했던 모든 걸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내 삶은 당신이나 친구나 주변 모두의 안줏거리가 아닌 오롯이 내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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