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에서 프로그래머로..
국민학교 시절 선친께서 내게 "네 꿈은 무엇이냐?" 물어보면 항상 "선생님"이라고 대답했었다.
그렇지만 시골에서 별을 보며 자란 내 꿈은 [천문학자]였다. 중학교 시절 도서실 한 켠에 꽂혀있던<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빌려서 대출기한을 연장하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어린 시절 책을 좋아하던 내가 그냥 우주의 별 사진이 빼곡하던 그 책을 골랐던 건 우연이다. 너무나 두꺼웠던 책이라 사진 위주로 책을 다 읽고는 밤하늘에 매료되어 여름밤이면 교회 교육관 옥상-올라가기도 힘들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없어서 옆에 있는 큰 호두나무를 타고 올라가야만 했다.-에 올라가서 누워서 별을 헤는 것이 즐거웠었다. 그때는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별자리에 대해서 잘 알았고, '광년'이니, '세페이드 변광성'이니 하는 별에 관한 잡다한 지식들이 머리에 들어있었다. 불행하게도 내 주위에는 그런 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만한 친구들이 없었고 내 꿈은 마음 속에만 꽁꽁 숨겨져 있었다.
고등학교를 우리 지방에서는 그래도 명문이라고 할 수 있는 학교로 진학을 했고, 진로에 대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꽤 많았다. 우리는 순수학문을 할 것인가, 돈이 되는 학문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꽤나 심도있는 의견을 나눴고 내 꿈이 천문학자라는 것을 들은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천문학과를 나와서 제일 성공한 사람이 방송국의 기상캐스터라더라."
그 말을 들은 나는 집안을 일으켜 세울 막중한 책임감 때문에 천문학과를 과감히 포기했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프로그래머]였다. 사실 별 시덥지 않은 이유로 결정하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슈퍼맨>이라는 영화다. 슈퍼맨에 보면 렉스 루터 쪽에 붙어서 일하는 천재 프로그래머가 한 명 나온다. 미국에 사는 모든 사람의 은행 계좌에서 1센트씩 빼내어서 자기 계좌로 이체하는 -말도 안 되는- 프로그램을 짜는가 하면, 인공위성을 자기 맘대로 조절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어떤 나라에 태풍을 인위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때는 그것이 멋있어 보였고 나도 저런 프로그램을 짜보자는 원대한 계획 아래, 전산을 전공하게 되었고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프로그래머로 일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슈퍼맨에 나오는 프로그램들이 너무도 허무맹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난 아직도 꿈을 꾼다. 아직도 밤하늘의 별을 본다. 여기서는 북두칠성을 볼 수가 없고 대신 남십자성을 본다.
호주에 온 이래로 직업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한국식품점에서 점원으로 일하기도 하고, 일회용품을 파는 도매업체에서 각 업소로 물건을 배달하는 일도 해봤다. 또 그 회사에서 창고를 관리하는 관리자로 일하기도 했고, 돈이 부족할 때는 세컨잡으로 저녁에 청소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꽤 큰 돈을 들여서 대형 차량 면허를 따고 버스운전도 해보았고.
지금은 남들은 한 번 가기도 싫어서 피하려고 하는 군대를 두 번째로 입대해서 군인이 되어가는 중이다. 장교도 아니고 부사관도 아닌 일반사병이지만 직업군인이 된 것이다. 이것도 정말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여기에 쓰기는 무리가 있고, 다른 글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군인이 나의 꿈이었나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꿈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난 아직 꿈을 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