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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웃사촌

by 현주영

나와 내 친구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다. 우리 학교는 여고였고 교복에는 여고 이미지와 어울리는 리본이 달려 있었는데, 보통은 그 리본을 잘 매지 않았다. 리본 디자인이 촌스러웠던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셔츠의 카라 좌우에 달린 조그마한 단추에 쥐똥만한 리본 구멍을 쑤셔 끼워 넣어야 하는 그 과정이 넥타이에 비해 굉장히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친구는 FM대로 그 작은 리본을 꼭꼭 매고 등교하곤 했다. 그뿐만 아니라 짧은 단발에 뿔테 안경을 썼으며 치마 길이도 딱 무릎 위 3cm를 올라가지 않았다. 선도부조차 흠잡지 못하는 그녀는 누가 봐도 모범생의 이미지였다. 첫 3월 모의고사와 중간고사 이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과연 보이는 대로 성적도 꽤 우수했다. 이 친구가 바로 옆 동네에 산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서로의 뒤죽박죽 연애사에 참견하던 대학 졸업 후, 지옥 같은 대학원 생활과 전쟁 같은 사회생활까지 함께 겪은 전우애로 다져졌다. 힘들 때마다 직장 상사, 동료 욕을 수시로 공유하면서 각자의 짠 내 나는 사회 초년을 버텼다. 겨우 제 입에 풀칠할 정도의 사회인이 되었나 싶었는데, 그때 내 친구가 먼저 시집을 갔다. 그 당시 나는 그 옛날 교실 복도를 삼선 쓰레빠를 신고 뛰어다니던 천방지축 병아리가 결혼한다는 생각에 버진로드 제일 앞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펑펑 울어버렸다. 친구는 자기가 먼저 한 결혼생활이 행복했었는지 나에게 웬 남자 하나를 소개해 주었고, 이제는 내가 그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렇다. 바로 이 친구가 내 남편 될 사람을 소개해 준 것이다.


솔직히 나와 내 친구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 친구는 모범생이었지만 나는 모범생과 약간 거리가 멀었다. 당시 나는 사관학교를 준비했던지라 급식을 먹고 틈만 나면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여고생의 샤랄라한 교복보다는 생활복이라 일컫는 체육복을 더 자주 입었다. 사관학교 자체 시험과 수능 위주의 공부로 내신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체육만 꾸준히 1등급을 유지했다. 쉬는 시간에도 아이돌이나 연예계 이슈보다는 짝꿍과 체스 두는 것을 더 좋아했다. 말투도 직설적이고 목소리나 행동도 컸기 때문에 내 친구처럼 진중하고 다정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아직까지 붙어 지내는지 의문이다. 얼마 전, 친구와 같이 동네 근처에서 브런치를 먹고 식당 지하 주차장을 나서는데 지하 주차장의 울림이 꽤 웅장한 것 아닌가. 순간,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배운 <오페라의 유령> OST 중 크리스틴의 ‘Think of me’ 아리아 한 구절을 부르고 싶은 욕망이 간질간질했다. 이심전심이라고 서른 넘은 여자 둘이 아무도 없는 지하 주차장에서 노래방에 온 듯 아리아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멋들어지게 완창하고는 친구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나는 밖에 나가면 이러지 않는데, 너랑만 있으면 또라이가 돼.”

“초록은 동색이라고 원래 끼리끼리 만나는 거야. 네가 만약 정상이었다면 나를 말렸겠지.”




우리 동네는 오후 4시쯤 되면 아파트 놀이터에 하원을 마친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삼삼오오 모인다.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꺄르륵 웃는 소리로 가득 차 무슨 일본 애니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평화로움과 따사로운 장면들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동네다. 하지만 브런치를 먹고 나온 나와 내 친구는 이 그림에서 살짝 이탈된 느낌의 무언가이다. 한 프레임에 넣기 위해 줌아웃해 보면 이 그림에 끼인 엉거주춤한 나와 카페인에 절어 있는 내 친구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도 저 평화로워 보이는 프레임에 자연스러운 한 컷이 되어 있는 날이 오겠지. 시간이 오래 흐른 훗날 다시 돌아보았을 때, 흰머리 그득한 백발 할머니 둘이서 오픈카를 타고 제주도 해안도로를 달리며 서로의 손주 자랑을 늘어놓는 장면이 스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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