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매년 아빠의 생신을 생각보다 조촐하게 보냈다. 내가 타지에 사는 바람에 딱히 큰 이벤트 없이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과 생일 케이크, 그리고 가끔 나나 동생이 보내드리는 작은 선물로 보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 아빠의 예순 잔치에는 특별한 손님이 함께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결혼 생각 없던 딸 옆에 생긴 든든한 아군과, 아들의 곁에서 오랜 시간 함께 해준 고마운 친구가 특별히 ‘우리 아빠’ 생신이라고 찾아와 준 것이다. 이 상황에서 어느 아빠가 행복해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혼자서 빈둥거리던 과년한 딸을 데리고 있던 아빠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아빠는 시집가기 싫어하는 서른 넘은 딸을 향해 직접적으로 걱정하는 내색을 보이시지는 않았지만, ‘정말 안 갈 셈인가?’하고 속으로는 뭉근한 걱정을 하셨을 것이다. 엄마한테는 호기롭게 “괜찮아, 내가 당신하고 우리 딸랑구 죽을 때까지 데리고 있으면서 먹여 살리지 뭐!”라고 외치며 출근하시는 아빠는, 직업상 무겁고 두꺼운 안전화를 신으신다. 아빠의 신발 종류는 출퇴근용 슬리퍼, 안전화, 그리고 엄마와 놀러 갈 때를 위한 운동화 이렇게 세 종류뿐이다. 찜찜한 근심 속에서 남몰래 한두 해를 보냈을 아빠께 이번 생신 선물로 딸 결혼식 때 신을 명품 구두를 사드렸다. ‘좋은 신발은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라는 말처럼, 이제 아빠도 내가 사드린 명품 구두로 좋은 곳만 다니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이렇게 비싼 생일 선물을 해준 것은 나도 태어나서 처음이었으나, 원래 용감한 결정은 계획 없이 이루어지기 마련 아니겠는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선물을 해 주는 것은 사실 나만 알고 있는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깨달은 것은, 생각보다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는 것이다. 결혼 준비를 시작하면서 다짐한 것이 ‘결혼과 결혼식을 착각하지 말자’였다. 식에 드는 비용을 조금 더 아끼되 그렇다고 한 번뿐인 결혼식을 너무 없이 보이게 하고 싶지는 않아 어떤 결정이든 기나긴 신중과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점점 스트레스가 쌓여 ‘왜 내 결혼식인데 시원시원하게 결정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것인가?’하고 혼란이 오기 시작했고, 이즈음 아빠의 예순 번째 생신을 맞이한 것이다.
보통 누군가에게 선물을 할 때 첫 번째로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선물이 무엇인가, 두 번째로 그 선물의 가격이 적당한가를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 인생의 몇 없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생각을 길게 하지 않아 보는 것도 꽤 괜찮은 해소법일 수 있다. 특히나 그 선물의 대상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날 식당에서 나와 동생의 선물을 받아보신 예순의 아빠는 마치 산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여섯 살 아이로 되돌아가신 것만 같았다. 한 팔에는 명품 구두, 다른 팔에는 고급 양주를 박스째 품고 자랑하듯이 식당 밖을 나가셨는데, 그 발걸음과 뒷모습만으로도 내 스트레스는 날아가기 충분했다. 종종 그 사람의 기쁨을 보는 것이 나에게 더한 행복으로 돌아오는 때가 있는데, 바로 그때 나만의 카타르시스가 일어난다. 나만의 해소(解消)인 셈이다. 살다 보면 내 곁의 사람에게 큰 선물을 할 시간이 생각만큼 길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 둔다는 말이 있다. 기회를 놓친 이의 씁쓸함은 유난히 진하고 독하지만, 기회를 잡을 줄 아는 이의 다정함은 시원하고 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