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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Aug 25. 2023

크바스토프

세계 3대 지휘자니, 세계 3대 테너니 하는 수사에 놀아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클래식에 발을 들이긴 했지만 조금 알고 나면 참 우스운 얘기입니다. 여전히 성악 발성에 적응이 안됩니다. 오페라나 가곡,도 즐겨 듣는 편이 아닙니다. 그래도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음반은 서너 개가 됩니다. 아는 선생님 덕에 참고 끝까지 들었습니다. 한 번이 어렵습니다. 슈베르트의 삶과 <겨울 나그네>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도 여전합니다. 



왼쪽부터 호세 카레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하지만 토마스 크바스토프(Thomas Quasthoff)를 만나고 조금 달라졌습니다. 크바스토프는 나면서부터 신체적인 약점을 가졌습니다. 찾아보니 포코멜리아(해표지증)라고 부르는 선천성 기형입니다. 성악에 대한, 성악가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는 이였습니다. 김신록 배우의 가까운 표정 숏이 그랬듯, 서너개 음반과 비교해 들으며 다르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목소리로만 들어서 몰랐습니다. 그의 모습을 처음 보고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토마스 크바스토프



아래 영상은 마리아 조앙 피레스(Maria João Pires)가 연주하고 크바스토프가 부른 <겨울 나그네>입니다. 카메라는 원경으로 시작해 크바스토프의 신체를 가까이 잡지 않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봐도 긴가민가 합니다. 크바스토프를 모르고 본다면 처음엔 그런가 싶은 영상입니다. 카메라는 원경에서 시작해 원경과 얼굴 클로즈업 숏을 번갈아 비추다가 13:16에 가서야 크바스토프의 전체 모습을 풀샷으로 잡습니다. 처음 그를 보는 사람은 그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그제야 발견합니다.


카메라 감독의 배려일까요? 그를 모르는 이들이 선입견 없이 듣고 음악에 빠질 수 있는 짬을 주는 걸까요? 13:16초를 지나면서 30초 동안 카메라는 천천히 크바스토프에게 다가갑니다. 그제서야 크바스토프의 본래(전체)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의 신체가 여느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려 깊은 카메라 움직임 덕에 이미 크바스토프의 목소리와 표정에 푹 빠진 이후입니다. 이후로도 카메라는 초반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듯 나대지 않습니다. 


크바스토프를 듣고 있자면 노래가 그리는 아득한 ‘풍경’이 아니라, 노래 부르기라는 노동으로 쌓고 묵힌 삶의 ‘장소’가 얼마나 절박했을지를 돌아봅니다. 대구는 종일 비 소식에 흐립니다. 오늘은 크바스토프가 소리 내는 <겨울 나그네>를 권합니다. 혼자 있다면 좀 크게, 같이 쓰는 공간이라면 소리를 조금 낮춰 나눠 들어도 크게 방해가 되진 않을껍니다.


https://youtu.be/OiAc76EmF_w?si=-rvehG89MpGLMc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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