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행성>(문학과지성사, 2011)
아래층 방에 가 있을 때 들은
어딘가 다른 물소리,
저 물소리가 아래층에서 듣고 올려 보낸
다른 이의 몸을 한 바퀴 돌고 온
내가 처음 듣는 새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
모서리가 둥글게 다듬어지면서
먼저 들은 이의 귓바퀴를 쓰다듬고 나온
저 아롱다롱한 소리
손때 묻은 소반처럼은 아니지만
반짝이며 윤기가 도는
위층에서 듣는 개울물 소리,
누군가 종이접기하듯 접어 올려 보낸 물소리
나도 접어
옥상으로 올려 보낸다
오늘 밤 은하수 건너는 뭇별이 들을
내가 어루만진
저 나선형 물소리가 가닿는 곳은,
소리가 긴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는 방
(<소리의 사다리>전문, 「기억의 행성」, 문학과지성사, 2011년)
조용미(의 시)는 남다르다. 풍경을 대하는 조용미는 정서에 기대지 않고 감각한다. '정서'로 묘사하지 않고 '감각'으로 지각한다. 정서로 '묘사'한 풍경은 과잉과 센티멘털(나쁘다는 게 아니라)할 수 있고, 감각으로 '지각'한 풍경은 건조하고 메마를 수 있다. 조용미는 감각으로 풍경을 지각하되 정서로 묘사하는 다른 누구의 것(시)보다 깊고 풍부하며 사려깊다. <기억의 행성>은 조용미 시(인)의 어떤 '절정'이다. 게다가 조용미와 곁들여 읽는 신형철,은 그야말로 상찬上饌이다. '조용미와 신형철은 이렇게 만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