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배처럼 텅 비어>(문학동네, 2016)
지난 여름내내 최승자를 또 읽었다. 홀가분해진 최승자지만 어렵사리 읽었다. 시나 소설, 글을 통해 작가를 어림잡아 헤아리는 모양새는 못된 버릇이다. 가능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일이지만 버리기가 어렵다. 무엇이든 그저 즐기지 못하는 것은 병이다.
숨죽인 깊은 밤
뱃사공 하나 빈 하늘을 노 저어 간다
그는 神일런지도 모른다
(‘숨죽인 깊은 밤’ 전문, 97쪽)
단출해진 최승자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땅을 떡하니 내려다본다. 딱 잘라 말하는가하면 선문답처럼 끝을 내리고 흐린다. 사납고 모진 기운은 사라지고 느긋하고 너그러워졌다. 잃은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일까?
누구에게나 모국어는 슬픔의 제사장
(‘모국어’ 전문, 99쪽)
2016년 시집 표지 안쪽에 “컷 이제하”라고 적은 최승자 그림은 1984년 시집의 것이다. 고달픈 출판사는 종종 잘못 적는다. 적은 것 둘 중 하나는 틀렸다. 2016년 시집의 최승자와 1984년의 최승자가 같다. 게으른 출판사가 시의 변화를 못 알아채듯 시인의 얼굴도 그대로 펴냈다. 괜히 트집이다.
“…하염없이 비루먹은 한 생애가 걸어가고 있다...”
시인이 곧 떠날 것 같(아 불안하)다.
미루어 헤아린 생각이 빗나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