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민음사, 2014)
기혁 시인은 영리하다. 영리하지만 누군가 영악해질 때 그 사림은 재수없다. 재수 없지 않을 만큼 딱 그민큼 영악하긴 쉽지 않은 법이다. 시인은 해묵은 감정을 풍광에 빗대고 절기에 엮어, 다듬고 비틀어 흩뿌린다. 그렇게 흩날린 감정이 은근하고 다정하다. 흩날린 감정이지만 실어 나르는 언어가 탄탄한데, 단어를 이어 문장으로, 문장과 문장을 이어 짓는 순간의, 호흡과 리듬까지 잡아챈다. 이 순간은 소리 내어 읽어야 할 순간, 소리 내면 다른 무엇이 들린다. 가령 이런 시구,
“별똥을 보며 내린 예언은 가슴을 시리게 한다, 말하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신음의 꼬리를 감춘 채 새벽이 밝아 온다
피로 물든 새들의 날갯짓이 불구를 미화한다
쓰러진 노동자의 행성을 향해
대기권에 진입하는 별똥
봉제된 행성의 말 없는 공전주기가 말똥말똥 시려 온다”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 ‘분신(焚身)’ 부분, 민음사, 115쪽)
정의를 외치는 절규가 퍽퍽할 수 있고 사랑을 속삭이는 고백이 헛헛할 수 있는데, 기혁은 숭악하게도 그 사이를 가로지른다. 삭힌 사색을 재치있게 버무린 시구가 읽는 이의 맨살을 부비적대고 소리 내면서 총총거린다.
기혁의 첫 시집,을 꼬옥 거머쥔다.
간만에 심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