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시인(1964 - 2018. 10. 3)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실천문학, 1998)

by 기성



소설가 김훈은 서울 광화문 근처에서 술 마시다가 잔뜩 취해 독일 사는 허수경 시인에게 국제 전화를 걸었단다. "야, 어디냐? 우리 광화문 근처에서 술 마시고 있으니까 택시 타고 얼른 와!"라고 해서 허수경을 눈물 짓게 했단다. 허수경 시인은 내게 시인의 육체적 죽음을 너무도 안타까워하며 애도했던 첫 시인이었다. 4년 전 그 날 내 SNS 타임라인에도 선생을 기리는 글•말들이 많이도 올라왔다. 일면식도 없지만 이맘 때면 허수경 선생이 많이 생각난다. 이른 새벽에 허수경 선생을 다시 읽는다.




1998년 초판본 표지



미루고 미루다 허수경 선생의 시집을 처음 만난 건 2012년이었다. 서 너 권을 모으고는 있었지만 읽지 못했다. 실천시선 57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가 공교롭게도 첫번째 시집이었다. 그때는 그 시집이 신간인 줄 알았다. 그때까지만해도 <혼자가는 먼 집>이 허수경 시인의 첫번째 시집인 줄 알고 있었다. 듬성듬성 읽고 군데군데 펼치던 시기였다. 며칠을 읽고서야 아뿔사 선생의 첫 시집이란 걸 알았다. 묘한 감정이 일렁였다.


엄혹한 80년대를 통과하던 “가시내”가 도망친 곳은 고향이었다. 비겁해서가 아니라 갈 곳은 거기 밖에 없었다. 국가와 자본은 사람들에게서 고향을 본격적으로 빼앗고 삼키기 시작했다. 우연이었는지 기획이었는지 몰라도 뿌리가 흔들리자 모든 게 흔들렸다. 흔들거리는 것들은 다루기 쉽다. 그래서일까, 뿌리를 움켜지고 감싸며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시인들이 있(었)다. 말이란 얼마나 가볍고 글이란 얼마나 가련한가,라고 중얼거리는 시인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별로 할 말이 없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안부를 묻습니다”

선생님, 거기선 건강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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