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실천문학, 1998)
소설가 김훈은 서울 광화문 근처에서 술 마시다가 잔뜩 취해 독일 사는 허수경 시인에게 국제 전화를 걸었단다. "야, 어디냐? 우리 광화문 근처에서 술 마시고 있으니까 택시 타고 얼른 와!"라고 해서 허수경을 눈물 짓게 했단다. 허수경 시인은 내게 시인의 육체적 죽음을 너무도 안타까워하며 애도했던 첫 시인이었다. 4년 전 그 날 내 SNS 타임라인에도 선생을 기리는 글•말들이 많이도 올라왔다. 일면식도 없지만 이맘 때면 허수경 선생이 많이 생각난다. 이른 새벽에 허수경 선생을 다시 읽는다.
미루고 미루다 허수경 선생의 시집을 처음 만난 건 2012년이었다. 서 너 권을 모으고는 있었지만 읽지 못했다. 실천시선 57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가 공교롭게도 첫번째 시집이었다. 그때는 그 시집이 신간인 줄 알았다. 그때까지만해도 <혼자가는 먼 집>이 허수경 시인의 첫번째 시집인 줄 알고 있었다. 듬성듬성 읽고 군데군데 펼치던 시기였다. 며칠을 읽고서야 아뿔사 선생의 첫 시집이란 걸 알았다. 묘한 감정이 일렁였다.
엄혹한 80년대를 통과하던 “가시내”가 도망친 곳은 고향이었다. 비겁해서가 아니라 갈 곳은 거기 밖에 없었다. 국가와 자본은 사람들에게서 고향을 본격적으로 빼앗고 삼키기 시작했다. 우연이었는지 기획이었는지 몰라도 뿌리가 흔들리자 모든 게 흔들렸다. 흔들거리는 것들은 다루기 쉽다. 그래서일까, 뿌리를 움켜지고 감싸며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시인들이 있(었)다. 말이란 얼마나 가볍고 글이란 얼마나 가련한가,라고 중얼거리는 시인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별로 할 말이 없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안부를 묻습니다”
선생님, 거기선 건강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