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올라도 4대 보험이 더 크게 오르니 실수령액은 그대로
“입사할 때에 비해 연봉은 거의 20% 올랐는데 월 실수령액은 6만 원가량 늘어났어요. 물가가 오른 걸 생각하면 급여가 줄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3년 차 직장인 A씨의 말이다. 최저임금도 오르고 연봉도 올랐는데 월 실수령액이 크게 늘지 않은 직장인이 의외로 적잖다.
A씨는 입사 후 지금까지 말 그대로 일에 파묻혀 살았다. 중학생 때부터 장래희망이던 업계에 들어갔으니 열의가 체력을 앞섰다. 야근은 물론, 주말까지 일을 놓지 않았다. 노력한 만큼 보상도 따르는 것 같았다. 회사는 해마다 평균 4~5%씩 연봉을 인상해줬고, A씨는 높은 업무 성과로 동료들에 비해 연봉이 빨리 올랐다. 입사할 때 연봉은 4100만 원가량이었지만 지금은 4800만 원 정도다.
하지만 월 실수령액으로 따져보니 3년 전에 비해 6만 원 늘어난 것에 그쳤다. 먼저 소득세와 주민세 등 세금이 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당초 15%였던 세율이 24%로 인상됐다. 여기에 국민건강보험료율이 올랐다. 국민건강보험료율은 2017년 6.12%에서 2018년 6.24%, 2019년 6.46%로 상승했다. 국민건강보험료율이 오르면 따라 오르는 것이 장기요양보험료율이다. 국민건강보험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험이라면, 장기요양보험은 만 65세 이상 노인의 복지를 위해 보험료를 걷는 것이다. 내는 액수는 국민건강보험에 비해 훨씬 적지만 증가율은 가팔랐다.
장기요양보험료율은 2017년 국민건강보험료의 6.55%에서 2018년에는 7.38%, 올해는 8.51%가 됐다. 따라서 올해 연봉 4000만 원인 직장인이 매달 내는 국민건강보험료는 10만4430원, 장기요양보험료는 8880원으로 총 11만3310원이다. 하지만 2016년에는 국민건강보험료 9만9000원, 장기요양보험료 6500원 선으로 총 10만5500원이었다. 국민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를 합하면 3년 사이 7.4% 늘어난 셈이다.
직장인은 소득이 늘어나면 국민건강보험료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올해 기준 인당 월평균 14만6000원을 더 냈다. 국민건강보험료는 매년 4월 지난해 소득 변동을 확인해 정산한다. 소득이 올랐으면 소득에서 추가로 보험료를 더 내고, 반대로 소득이 줄었으면 돌려받는다.
A씨는 월급을 총 13번 받는다. 12번의 월급에 상하반기에 고정 성과급 형식으로 월급을 절반씩 나눠서 받는 것이다. 2016년 입사 당시 A씨의 월급은 세전 320만 원. 여기서 4대 보험료 20만 원과 소득세·지방세 12만 원을 빼면 실수령액은 288만 원가량이고 야근할 때마다 받아온 택시비 12만 원을 합쳐 매달 300만 원 정도가 통장에 들어왔다(표 참조).
3년이 지난 A씨의 월 실수령액은 306만 원가량이다. 세전 월급은 365만 원으로 약 14% 올랐다. 하지만 그만큼 공제 내역이 많다. 4대 보험료는 총 36만5000원 선으로 16만 원 정도 증가했다. 4대 보험 증가율은 82%로, 월급 인상률을 크게 앞지른다. 여기에다 국민건강보험 조정분이 5개월간 매달 4만 원가량씩 추가로 빠져나간다. 소득세와 주민세는 총 19만 원. 세금과 4대 보험료를 합하면 세전 월급에서 빠져나간 돈이 3년 전에 비해 28만 원가량 늘었다.
여기에다 이제는 야근해도 더는 택시비를 받지 못한다. A씨는 “관리자급보다 실무자에게 일이 몰려 입사 2~5년 차는 보통 주 1~2회 자정까지 야근을 하게 된다. 문제는 이 야근을 전부 인정해버리면 주52시간을 넘길 수 있다. 결국 밤 11시가 되면 회사 전등이 꺼져 일을 싸들고 집으로 가 야근을 한다”고 밝혔다. A씨는 또 노동조합과 팀 내 회비로 월 3만 원씩 낸다. 3년 전에는 신입사원이라 내지 않던 돈이다. 결국 세전 월급이 45만 원 올라도 실수령액은 6만 원가량 늘어나는 데 그친 것이다.
세금과 4대 보험 납부액이 늘어난 것은 비단 A씨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국민부담률’이 크게 늘었다. 이는 한국 국민이 납부한 세금과 각종 사회보장기여금(4대 보험 및 기타 준조세 성격의 기금)을 합한 금액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8월 26일 국회예산정책처의 ‘2019 조세수첩’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부담률은 26.8%였다. 전년 대비(25.4%) 1.4%p 오른 것으로 최근 10년간 연간 상승폭 가운데 가장 높다.
국민부담률은 2008~2012년에는 감세정책이 시행돼 오히려 점차 낮아졌지만, 2014년 이후로는 줄곧 올랐다. 2013년 23.1%에서 2014~2016년 23.4%, 23.7%, 24.7%로 소폭 상승했지만, 현 정부에서 그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2017년 25.4%로 시작해 지난해에는 26.8%에 달했다.
하지만 한국의 조세 및 사회보장기금 부담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낮은 편이다. OECD 평균 국민부담률은 2017년 34.2%를 기록했다. 주요 국가보다 국민부담률은 낮지만, 부담이 늘어나는 속도는 빨랐다. OECD 평균 국민부담률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3%대를 횡보했다. 2016년 34%에서 2017년 34.2%로 소폭 올랐다. 5년간 총 1.2%p 오른 셈이다. 같은 기간 한국은 국민부담률이 2.3%p 상승했다.
국민부담률이 빠르게 오른 것은 지난해 세금이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총 조세 수입은 역대 최대 수준인 377조9000억 원을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살림살이가 나아졌으니 세금이 늘어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대한민국 가계 및 기업의 총소득은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근로소득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뉴스1]
2018년 회계연도 총세입·총세출에 따르면 전년 대비 국세 증가율은 10.6%.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 3.1%의 3배를 넘는다. 가장 크게 오른 세금은 기업 소득에 대한 세금으로, 법인세는 추경 예산 대비 7조9000억 원을 더 걷었다. 뒤를 이어 양도세는 7조7000억 원 늘었다. 둘을 합치면 전년 대비 총 19%가량 증가했다. 반면 임금 상승에 따른 근로소득세 초과분은 2조3000억 원, 소비 증가를 나타내는 부가가치세는 2조7000억 원 증가에 그쳤다. 기업 소득만큼 가계 소득이 높아지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정부 관계자는 “반도체 호황 등으로 소득세가 늘었다. 근로소득세 초과분도 이에 따른 성과급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국민건강보험료 등 준조세 성격의 사회보험료 인상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조세부담률(총 조세÷명목GDP)은 20.0%로 전년 대비 1.2%p 상승했다. 하지만 국민부담률((총 조세+4대 보험)÷명목GDP)은 26.8%였다. 전년 대비 증가율도 조세부담률에 비해 0.2%p 높다. 회사의 인건비 부담 증가분에서도 4대 보험료가 가장 컸다. 고용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300인 미만 기업체의 인당 월평균 노동비용은 427만900원으로, 전년 대비 4.9% 늘었다. 300인 이상 기업체의 노동비용 증가는 1.5%였다. 노동비용은 임금과 복지, 퇴직금, 4대 보험, 교육 훈련 및 채용 비용 등 근로자 채용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말한다. 이 중 가장 크게 증가한 것은 4대 보험료를 의미하는 ‘법정 노동비용’으로 전년 대비 5.6% 늘었다.
시민단체들이 8월 13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앞에서 ‘건강보험 재정, 국고지원 정상화 및 확대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를 가졌다. [뉴스1]
앞으로는 4대 보험에 대한 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이 단계적 요율 인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 도입 이래 소득의 9%로 동결됐던 국민연금도 요율 인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와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지난해 내놓은 국민연금 보험료 개선 방안 가운데 가장 유력하다고 꼽히는 것은 2020년부터 11%로 올려 15년간 유지한 뒤, 2034년부터는 소득의 12.31%로 인상하는 방안이다.
고용노동부도 실업급여를 높인다. 고용보험의 실업급여 보험료율을 현행 1.3%에서 연말까지는 1.6%로 올릴 계획이다. 국민건강보험료도 여지없이 올라 올해 6.46%에서 내년에는 6.67%가 된다. 해당 안이 전부 통과된다면 직장인(4대 보험 중 산재보험을 제외한 3개는 회사와 근로자가 절반씩 부담)의 4대 보험료율은 올해 8.380%에서 내년 9.635%로 1.255%p 인상된다.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대기업 직장인 김모(27·여) 씨는 “2년째 실급여가 제자리걸음 수준이지만,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기 힘들다. 대기업 사원이 배부른 소리하느냐는 핀잔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가려고 몇 년씩 공부하고, 입사한 뒤에도 야근을 불사하며 성과를 내려 애썼던 노력의 대가는 어디로 갔나 싶다”며 답답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