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칸방의 고독을 선율로 바꾼 '물 위에서 노래하다'
주 1~2회 살롱에서 열리는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는 친구들이 만들어준 요즘말로
"개인 리사이틀"이었다.
불규칙한 생활과 152cm의 단신에 안경과 탈모 등 외모컴플렉스 경제적 빈곤 그리고 마지막의 매독까지 이런 사람에게서 어떻게 이런 주옥 같은 곡들이 나왔을까 하는 의아스러움이 가득하다.
이런 슈베르트에게 "슈베르티아데(슈베르트의 밤)"는 음악을 하게끔 만든 주요 동력원이자
거의 유일한 동력원이었다.
시에 음악을 붙여 만든 가곡을 650여곡 만들어 가곡의 왕이라 불리고 그중 "보리수(Der Lindenbaum)"로 유명한 "겨울나그네(Winterreise D.911)" 24곡과 마왕, 송어, 자장가등이 우리에게도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슈베르트의 곡은 Schubert Piano trio no2 in E flat major D.929 & 2.andante con moto이다.
https://youtu.be/e52IMaE-3As?si=JvisZd5xX-pjiFpJ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1797-1828)의 생은 베토벤과 동시대였으며 주 활동무대도
같은 빈이었다. 아마도 가까운 거리에서 많이 지나쳤으리라 짐작된다.
물론 당대의 베토벤은 근접 할 수 없는 최고였고 슈베르트는 그에 한참 미치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처럼
베토벤을 동경해 마지 않았다.
베토벤 사후 1년후 슈베르트는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소수에게만 인정받던 그의 곡들이 재조명되어진다.
당대의 거목 베토벤은 많은 작곡가들에게 본의 아닌 악영향을 끼쳤는데 바로 아류(亞流,Imitator)문화다.
우리가 아는 독일이 낳은 3B
(바하, 베토벤과 함께 영국인들은 브람스는 약하다며 비틀즈를 넣는다 ... ㅎㅎ 개그쟁이들)
중 하나인 브람스도 예외가 아니었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평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의 슈베르트는 이점에서 달랐다.
아마도 앞서 이야기했던 거의 평생 피아노도 가져보지 못한 가난과 연애 한번 못해 본 열등감을 원인으로한 병적일 정도의 극도로 예민한 감수성이 아닐까 싶다.
특히 "물위에서 노래하다"의 가사를 보면 황혼녘에 물가에서 서성이다 어디 한군데 정 붙일 곳 없어 스러지는 슈베르트 자신과 너무나 닮아있다.
물론 슈베르트가 작사한 것은 아니지만 곡에서 느껴지는 낭만적이나 우울한 또는 비관적인 분위기는 가사와 어울리고 이는 보는 시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정신불안과 다르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작곡 기조가 슈베르트를 재조명한 커다란 이유 중에 하나가 된다.
바로 누구와도 다른 특유의 감수성(sensibility)이다.
우리가 그의 곡에서 위로와 치유를 받게되는 이유이기도 한 ... ... .
생전보다는 사후에 보다 인정 받은 많은 예술가 중 하나가 된것이다.
"슬픈 젊은 날의 초상"을 대표하는 천재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