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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본 Oct 23. 2021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with 별 헤는 밤 / 윤동주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 별 헤는 밤 中 / 윤동주 -




늦은 밤. 모두 잠에 든 고요한 밤. 조용히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가만히 밤의 정적을 느껴보다가 문득 밖으로 나가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가로등에 가려져 밤하늘 별빛은 가뭄에 콩 나듯 잘 보이지 않지만, 낮에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공기의 흐름과 하늘의 온기를 마음껏 경험해 본다. 생각도 나지 않는 잡다한 이야기로 터질 듯 가득 찬 머릿속이 비워지고, 답답했던 가슴이 풀어진다. 하루 종일 타인의 삶, 타인의 기준, 타인의 기대, 타인의 요구에 잊고 있던 내가 보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캄캄한 밤하늘도 이렇게 위로가 되는데, 청명하게 빛나는 많은 별빛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윤동주 시인이 북간도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별에게 노래를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밤과 별은 그렇다. 감상적이게도 사람의 마음을 녹여준다. 쓸쓸함도 서글픔도 기쁨도 행복도 모두 안아준다. 아무것도 주는 것 없이 들어만 주는데. 그저 바라만 보는데. 그런데도 위안이 된다. 위로가 된다. 힘이 된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 고통, 아픔, 그리움과 고독함, 쓸쓸함 모두 밤 하늘에 날려버리고, 별빛을 빌려 온기를 채운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1889) 캔버스에 유화, 오르세 미술관


생 레미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 아를에 거주했을 당시 고흐는 론 강이 흐르는 강변에 나가 별을 그리는 것을 즐겼다. 강둑을 따라 늘어선 카페며 레스토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그리고 그보다 더 환하게 빛나는 밤하늘의 별빛으로 가득한 프랑스 남부 지방의 아름다운 밤 풍경은 윤동주 시인이 북간도의 별처럼 고흐에게 많은 위로와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은 아를지역 론 강가의 밤의 풍경을 환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하늘과 땅, 물이 밤의 빛으로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다. 작품의 제목에서처럼 작품의 상당수는 ‘하늘’이다. 밤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별들은 마치 활짝 핀 꽃잎처럼 빛난다. 흰색 물감을 튜브에서 직접 짜내어서 별의 가운데 부분에 하이라이트를 주었더니 더욱 만개한 꽃처럼 보인다. 하늘 아래 강변의 불빛은 물가에 비친 그림자가 되어 빛난다. 마치 하늘의 별빛이 물에 반사된 것처럼. 이처럼 하늘과 물은 자연의 빛과 인공의 빛으로 어우러져 만난다.

물과 땅은 미묘하게 이어진다. 화면 왼쪽 아래 두 인물이 없었다면 땅이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땅과 물을 잇고 있는 것은 작은 배다. 하지만 정박한 배들은 별 빛에 묻혀있다. 어디부터 땅이 시작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경계선이 모호하다. 땅 위로는 얼굴의 형제가 정확하지 않은 두 남녀가 서로 팔짱을 끼고 거닐고 있다. 필히 연인일 것이다. 아름답게 빛나는 별빛과 화려한 강의 불빛은 등불이 되어 온 사방을 환히 비추고, 연인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고 서로의 사랑하는 마음과 별빛의 위안 속에서 평온한 밤 공기를 즐긴다. 




반 고흐가 밤에 매료된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요하고 적막한 가운데서도 찬란한 생기를 불어주는 밤과 별빛의 에너지도 고흐가 밤을 사랑하게 되는데 한 몫 했을 것이다. 자신과 또는 타인과 진솔히 마주할 시간을 허락하는 밤. 하늘 아래 모든 생명체의 어떤 감정도 이해할 것 같은 넓은 밤. 게다가 단 한명이 아닌 모두에게 골고루 전해지는 별 빛. 이 같은 밤을 사랑했기에 고흐는 처절하게도 고독하고 고통스러웠던 낮도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길이 보이지 않는 현실과 무거운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사는 모두에게 밤하늘과 별빛은 - 반 고흐에게, 또 윤동주 시인에게 그러했듯 - 위로의 목소리가 되어준다. 환하게 빛나는 별빛은 잃어버린 길을 안내하고, 조용히 온 세상에 내려앉은 어둠은 어깨를 다독이며 용기를 준다. 진실한 시간을 맞이하길. 그리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기를. 그것이 짙고 어둑한 밤과 찬란히 빛나는 별이 주는 선물이다.

어떤 별에 사는 꽃을 좋아한다면 밤에 하늘을 쳐다보는게 즐거운 거야.
어느 별이나 다 꽃이 필테니까.
- 어린왕자 中 / 생텍쥐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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