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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본 Sep 18. 2022

<해리엇>

- 오늘 읽은 책




어린이 대상 창작동화 『해리엇』(한윤섭 글, 서영아 그림, 문학동네)을 읽었다. 몸이 아파서 조금 쉽고, 빠르게 읽고 싶은 책이 필요했나 보다. 서점 한 바퀴를 돌다가 '갈라파고스 거북 이야기'라는 부제에 끌려서 고민도 하지 않고 책을 집어 들었다. 초등학교 5-6학년 정도면 읽기 딱 좋을 창작동화지만, 완독 후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어른동화'가 틀림없다. 




책의 주인공은 자바 원숭이 '찰리'다. 숲에 살던 찰리는 어린 원숭이때 엄마와 헤어져, 동물원을 운영하는 한 부부의 아이의 반려 원숭이가 되었다. 찰리는 차츰 사람과 사는 것에 적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물원으로 보내지게 된다. 동물원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다시 적응해야만 하는 찰리에게 처음부터 동물원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사람과 살았다는 이유로 배신자로 취급받고, 폭력도 당하는 등 힘든 생활이었지만, 170년이나 살아온 장수 거북이 '해리엇' 덕분에 찰리는 동물원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동물원 생활 5년 후, 나이가 이미 175살이나 된 거북 '해리엇'에게 남은 생이 단 '삼일'밖에 남지 않게 된다. 모든 동물들은 동물원 최고 어르신이자 지혜로운 중재자였던 '해리엇'을 슬픔 속에 보낼 준비를 하고, '해리엇'은 마지막 남은 생의 에너지를 모아 자신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털어낸다. 175년 전 갈라파고스에 살던 거북 해리엇이 어떻게 호주의 한 동물원으로 오게 되었는지, 그 여정 속에서 겪은 절망과 아픔, 그리고 175년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마지막이자 유일한 소망 - 갈라파고스로 돌아가기 위해 바다로 가는 것. 찰리는 해리엇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주고 싶어한다. 과연, 해리엇은 생의 마지막 밤,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린이 책이다 보니 술술 읽혔지만, 단순히 재미로 책장을 넘길 수는 없었다. 갈등과 화해, 위로와 격려로 가득한 『해리엇』은 동물을 빗댄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삶 그 자체였다. 찰리가 자연의 숲과 엄마 품을 떠나 낯선 인간의 세상에 적응해 가는 모습은 마음은 반드시 그렇지 않음에도 상대방에게 맞춰주며 탈 없이 하루를 견뎌내는 우리 모습과 닮았고, 텃새에 힘들어하고 외로워하는 찰리, 그럼에도 '해리엇'과 같이 반드시 나를 위로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는 '죽음'이 있고 '죽음'은 '새 생명'으로 이어지는 것이니 슬퍼할 필요 없다는 해리엇의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찰리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마지막, 해리엇의 이야기로 이어질 때는 눈물이 왈칵 났다. '과학'과 '지식'이라는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인간에 의해 강제로 고향을 떠나야 했는지. 인간도 환경이 바뀌면 적응하는데 이렇게 힘들고 고단한데,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그들도 사실은 해리엇처럼 고향을 그리워하며, 평생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간절히 기다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반려 동물을 유기하는 것 또한 그렇다. 그들에게 고향이나 다름 없는 첫 가족에게서 버려지게 되면, 그 아이들은 첫 가족 - 고향을 그리워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나 고생을 하게 될까? 해리엇의 이야기는 그저 단순한 창작 스토리가 아니다. 지금의 만연한 현실과도 일맥상통 한다.


동시에 해리엇의 오랜 '소망'은 삶의 원동력인 '희망'에 대해 말한다. 해리엇처럼, 찰리처럼, 동물원의 많은 동물들처럼 우리 모두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순응해 살아가고있는 것은 매 한가지다. 흰 줄 원숭이가 말한 것 처럼, "중요한 건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니까. 그렇게 현실을 충실히 살고, 마지막이 다가왔을 때는 어떨까? 오랫동안 품고 있을 어떤 소망 하나가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이루고 싶은가? 


그럼 바다로 가세요.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요. 너무 오래 기다렸잖아요.



찰리의 이 한 마디는 해리엇 뿐 아니라 내게도 하는 말 처럼 들렸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반드시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적어도 한 번은 도전 해 봐야 하지 않겠어? 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 마지막이자 유일한 소망을 175년을 잊지 않고 가슴 속에 품어온 해리엇처럼, 반드시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언젠가 될지는 몰라도 끝까지 가슴속에 품으라고.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반드시 이뤄내라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심장의 두근거림으로 가득했다. 분명 책의 마지막을 덮었는데, 내 책의 첫 페이지는 이제 막 시작된 것 같아서 설렘이 멈추지 않았다. 진솔하게 삶을 대하는 방법이 가득한 『해리엇』은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분명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바다가 날 갈라파고스까지 데려갈 거야.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해리엇'은 실제 175년을 산 갈라파고스 거북이며, 진화론의 창시자 - 찰스 다윈의 거북으로 알려져 있다. 갈라파고스에서 다윈에 의해 영국으로 왔고, 175년을 살다가 2006년 호주의 한 동물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해리엇』에서도 해리엇은 실제 이야기 그대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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