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인가
날짜지정강제연차에 대해
내가 다니는 회사는 백여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다.
노동자에게 법적으로 주어지는 연차를 소진하지 않으면 돈으로 돌려주기 아까워서 강제로 다 소진하게끔 만드는 노동법을 위반하고 있는 회사이다.
24년 12월 31일 회사에서 25년도 설명절과 추석에 연차로 쉬기로 희망하는지 설문조사를 했다. 날짜가 어중간하게 되어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나는 강제로 지정날짜에 연차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 강제연차를 쓸 것이라는 설문에 예스라는 답들을 했다. 나는 쓰지 않겠다고 답했다. '강제로 지정된 날짜를 정할 시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겠다'라고 관리자들에게나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말을 했다. 신고하겠다는 말에 '지지하겠다'는 동료도 있었고 비꼬는 듯한 '멋있다'라는 반응도 나왔다. 회사에 입사해서 돈으로 돌려주기 싫어서 연차를 강제로 소진하게 만들어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회사 방침이니 그냥 따르는 수밖에 없지'하며 그냥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내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에 복종하듯이 계속 따른다면 사용자는 한없이 천하고 무식한 인간들로만 취급하며 무시하는 건 다반사라는 걸 살아온 시간을 통해 익히 잘 알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60조 위반을 하고 있는 사용자가 잘못이고, 내가 옳은 선택임에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내 권리는 내가 찾겠다는 내 말은 그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마땅히 누려야 할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불평불만을 일삼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우리는 늘 어떤 시대, 어떤 지역, 어떤 사회 집단에 속해 있으며 그 조건이 우리의 견해나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을 기본적으로 결정한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만큼 자유롭거나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자기가 속한 사회 집단이 수용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집단이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애초부터 우리의 시야에 들어올 일이 없고, 우리의 감수성과 부딪치거나 우리가 하는 사색의 주체가 될 일도 없다."
일본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가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늘 어떤 집단에 속해 있어서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한적으로 사고한다는 걸 말해주고 있다. 주체적으로 생각지 못하고 체념과 무기력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대목이다. 타인이 내가 가진 것을 빼앗고 복종을 강요할 때 어떻게 해야 될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날짜지정강제연차는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 연차를 소진하라는 회사 방침이 내려올 시 노동상담을 통해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계획이다. 수동적인 자세로는 삶이 편할 수도 있다.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질문할 때 삶은 더 나은 곳으로 흐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