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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Jan 19. 2023

엄마에게 너무 낯선 다정한 남자

연애를 한다는 사실만으로 많은 축복을 받았다. 서울 - 대전을 오가야 했기에 내가 편하려면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했다. 연애하는 걸 가족에게 공유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말하면서 의외라고 생각한 건 엄마의 반응이었다. 연휴에 우리 집에 와서 굳이 밥을 먹고 간걸 보니 사귈 줄 알았다느니, 도대체 언제부터 좋아했던 거냐며 친구들 못지않은 호들갑을 보였다. 작년 여름, 애인과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애인과 엄마는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와중에 무슨 얘기를 저렇게 하나 싶었지만 내 할 일을 했던 나.


이전까지는 엄마 눈에 낯설게 보였던 애인. 엄마 대신 과일을 깎고, 바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런데 그때 둘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나 보다. 엄마는 어쩐지 애인을 가여워하기도 하고 야무지다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아직까지 모른다. 엄마는 나 없을 때 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모두 공유해주지 않는다. 엄마의 그런 면이 좋아서 내 마음대로 종종 친구들과 엄마와의 시간을 주기도 한다. (ㅋㅋㅋ)


하지만 엄마에게 애인은 너무나도 낯선, 다정한 사람이었다. 지금껏 집안 모든 일을 혼자 이끌어온 엄마는 아빠와 달리 대화도 잘하고, 필요한 물건을 잘 고르며 밝게 웃는 애인 앞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던 어느 엄마의 생일 저녁이었다. 생일 주인공도 아닌데다가 밥을 사지 않을 예정인 아빠가 나와 동생의 애인을 초대했다. 엄마는 특히 내 애인을 초대하기가 이르지 않나 생각했지만 아빠의 (평생 돌아봐도 드문) 강력한 주장으로 맞이해야 했다.


생일 주인공인 엄마는 그 누구보다 바빴다. 마침내 식당에 모인 우리, 엄마와 아빠는 본인 앞에 나란히 앉은 네 명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무엇보다 애인이 만들어온 피부과 시술 이용권을 받아 들며 그 누구보다 행복해했다. 생각지 못한 선물이었지만 최근 가장 필요로 했던 걸 딸의 애인이 선사한 것이다. 즐겁게 먹고 마시는 내내 엄마는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자식들이 눈앞에 있어 너무 좋다는 말을 몇 번이고 했다.


어쩐지 대리 효도를 하게 된 기분이라 묘했다. 그럼 난 어떻게 돌려줘야 하지, 하다가 그냥 내가 잘하는 거나 하며 존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애인이 신경 써 챙기는 부분을 생각하지 못하니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거나 잘해야지. 그게 뭔지 같이 지내다 보면 더 잘 알겠지 뭐. 각자 잘하는 걸 해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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