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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Jan 17. 2023

방학을 쟁취한 어른의 하루

마침내 방학을 맞이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사람에게 방학이란, 출근일을 앞두고 남은 기간을 말한다. 다른 무엇보다 이직이 가장 큰 과제 같이 느껴졌는데 해냈다. 어딘가 소속되지 않고 일할 수 있지만 내겐 아직 그럴 재간이 없다. 일하지 않고 사는 건 낯설다. 전업주부인 엄마를 보고 자랐음에도 일하지 않고 사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엄마는 바빴다. 일의 경계가 없었다. 눈을 뜨자마자 끼니를 준비하고 청소, 빨래를 하며 마당을 쓸었다. 장을 보러 다녔고 집안 대소사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에 틈틈이 친구와의 교류도 이어갔고 양가 친척 인사도 혼자 해냈다. 양쪽 할머니들이 살아계실 땐 반찬을 만들어 가져갔고 씻겨드렸다. 모두 혼자 했다. 물론, 우리 학교 일도 파악하고 있었으며 필요한 보험, 적금 등을 운용하는 것도 엄마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엄마처럼 할 자신도 없고 알 수도 없어 어떻게든 직장을 찾아 소속되어 일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직업적 커리어에 대한 욕심은 아주 나중 일이고 일하지 않는 시간을 ‘잘’ 보내기 어려워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 직장을 다니면 일하지 않는 틈틈이 집안일을 비롯한 다른 일들로 조금만 채우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쩐지 시간을 알차게 잘 보내는 거 같기도 하고, 금세 쌓인 시간을 톺아보며 뿌듯함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모르는 기분도 아니라 지금 방학을 맞이한 김에 온 힘을 다해 가만히 있다. OTT 플랫폼 여러 가지를 오가며 보고 싶었던 콘텐츠를 섭렵할 수 있는 행운을 만끽하고 있다. 가끔 주변 동네 산책을 하며 언젠가 틈내어 다녀올만한 곳을 찜해두기도 한다. 이런 시간이 사치로 느껴지지 않게, 조금 더 잘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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