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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Aug 20. 2023

지금 내 모습이 꽤 마음에 든다?

내가 결혼 준비를 하게 되다니 3

추석 연휴에 애인이 들렀다간 날. 엄마는 심상치 않다고 했고, 나는 평소처럼 친구들 중 한 명이 지나가다 들렀다간 거라고 했다. 다음날 곧 애인에게 만나보자는 이야기를 듣고, 이상스럽게 나도 바로 그러자는 답을 던졌다. 그런데 그 찰나에, 애인은 결혼을 원하는 사람임을 알았기에 결혼식을 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엄마의 생신이 있는 11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아빠는 유난히 사귀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보내야 한다며 보챘다. 아빠와 보낸 시간 중 처음이자 거의 마지막으로 아빠가 본인 의견을 끝끝내 밀어붙인 날이었다.


애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 것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애인은 바로 “좋아, 너무 즐겁겠다”는 식의 회신을 주었다. 당일, 1차로 저녁을 먹고 2차로 집에서 술을 또 한 잔 했다. 아빠는 느닷없이 결혼 이야기를 꺼냈고, 만난 지 겨우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애인은 순발력을 발휘해 답했다. 아직 결혼에 대해 둘이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한다면 나와한다는 이야기였다. 약 두 달 후 웨딩홀 계약을 했다.


근래 각자 청첩장 모임을 잡아 자리를 하다 보면 공통적으로 듣는 이야기가 있다.


1. 10년 동안 친구였는데 결혼을 해?! 남녀사이에 친구 없다

2. 언제부터 이성으로(?) 보였어?

3. 결혼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뭐야?


여전히 위 세 물음엔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다. 10년 동안 친구였지만 우리도 우리가 결혼할지 몰랐고, 그 과정이 드라마틱하지도 않았으며 딱히 어떤 계기가 있어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한 게 아니니까. 내 입장으로만 생각하려 해도 더 이상 그쪽 회로가 활발히 돌아가지 않는다. 애인을 제치고 생각하는 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더더욱 말을 아끼게 되거나,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때면 ‘내 입장은/내가 생각한 건’이라는 말을 덧붙이게 된다.


이렇게 내 생각이 정리되기까지 쉽지 않았다. 이 생각마저도 며칠, 몇 달 후면 또 달라질 수 있어 절대적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 다만, 오늘까지, 지금까지는 애인과 함께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만이 전부다. 그게 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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