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국경이 없듯 예술에도 국경이 없다.
처음 소장했던 작품이 떠오릅니다. 그 당시 저는 풍경화를 좋아해 섬과 바다를 아크릴 점묘화로 표현한 작품을 소장했었습니다. 윤형근 판화가 있었지만 처음 소장한 원화는 풍경 점묘화였죠. 그 풍경화를 소장한 이유는 고향에 대한 그림움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게 벌써 20년도 넘었다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세월이 유수보다 빠르다는 다소 진부할 것 같은 표현이 왜 이리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공감되는지요.
" 인간은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 푸릅니다." 엔도 슈사쿠
제가 좋아하는 엔도 슈사쿠의 문장입니다. 항상 나를 돌아보게 하는 문장입니다. 그 당시 처음 소장했던 그림을 생각하면 위 문장이 떠오릅니다. 그 그림도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1999년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서울로 상경했죠(대학입학 때문에). 그 당시 유일한 낙이 있다면 종로서적과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읽는 것이었죠. 지금도 교보문고와 종로서적은 새책도 언제든 열람할 수 있어 종종 가곤 합니다. 그때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이었던 거 같은데 처음 서점에서 작가님의 원화를 소장하게 되었습니다(위에 말한 풍경화). 어릴 적부터 책을 모으는 벽(癖)이 있었는데 그 처음 소장한 작품을 계기로 책과 함께 그림을 소장하는 벽이 생겼습니다. 그 열병도, 얼마 후 군대를 가기도 했고, 지금은 다시 운영하지만 종로서적의 폐업(2002)으로 제 삶은 조금은 더 단조롭게 변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터라 집에 있던 어른들의 책들은 대부분 읽었지요(40이 훌쩍 넘는 지금까지 TV를 보지 않습니다. 유튜브는 보고요 ㅋ). 어릴 적 가장 재밌게 읽었던 책은 최명희 선생의 '혼불(출판사: 한길사)'이었습니다. 2번 정도 읽었는데 지금 기억나는 인물은 '강실' 한 명입니다. 그때의 인상 때문인지 저는 '강 씨' 성을 가진 여성과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지요. (여담이지만, 강실의 성은 이 씨입니다. ^^) 최명희 작가님은 혼불이라는 책을 미완의 상태로 남겨두고 난소암 투병 후 1998년 12월에 돌아가십니다.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먹먹했는지 모릅니다.
"혼불 하나면 됩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참 잘 살다 갑니다." 최명희 선생
지금은 제 주변에 그림을 소장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그림은 마치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마중물 같습니다. 다양한 분야인 역사, 철학, 음악, 과학 등과도 무관하지 않아 이 세계가 점점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작품을 소장한 기간은 오래되었지만 원화를 많이 소장하지는 못했습니다. 모으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어느 정도 한계를 설정한 품목들은 빈티지 오디오, 오래 보관 가능할 것 같은 와인, 독일&일본의 100~200년 된 기계식 시계, 도록, 초판 순수문학도서 등입니다. 어릴 적 대가족이 살던 집은 어르신들이 돌아가신 후 제 잡동사니로 가득하게 변했답니다. 소망이 있다면 잡동사니를 보관할 (온습도 조절이 잘 되는) 창고를 50이 되기 전에 짓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소장하고 자연스럽게 예술 서적을 읽다 보니 매일의 삶이 예술과 동떨어지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예술은 경계 없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치 예술은 경계가 없이 넘나들며 사람의 인생에 중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할 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떠오른 문장이 아래와 같죠.
"사랑에 국경이 없듯, 예술에도 국경이 없습니다."
국경없는예술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내가 수집하는 예술 작품이 미완의 모습을 보이지만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해 갈 것임을 믿습니다. 무언가 미완성한다는 것은 아쉬움이 남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최명희 선생님의 고백처럼 작품을 소장하는 과정과 그 과정의 결과물인 작품을 통해 제 글을 읽는 독자님들께서도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참 잘 살다 갑니다'하는 고백을 서로가 서로에게 들려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