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콜라
스무살의 봄은 따분했다. 해 뜰 때 집에 갈 수 있었고, 해 뜰 때 집에 가지 않았다. 난생 처음 입에 댄 소주는 생각보다 맛이 없었고, 생각보다는 또 먹을만했다. 난생 처음 놀면서 해가 뜨는 것을 보며 바다를 걸었다. 머리는 어지럽고, 바닷바람은 아직 서늘했다.
학교 매점에서 400원짜리 콜라와 환타만 고민하던, 그러던 와중에 친구 놈이 뽑아버린 스프라이트나 먹게 되던 삶에 많은 선택지가 끼어들었다. 사이다와 막걸리를 섞어 이통일반이라 하였다. 소주와 백세주와 산사춘과 맥주를 섞어 소백산맥이라 하고, 맥주 잔에 소주 잔 두 개를 놓고 밖에는 맥주, 안에는 소주, 맨 아래 잔에는 콜라를 따라서는 고진감래라 하였다.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 쭉쭉쭉쭉.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거야. 이태백은 술이 들어갈수록 시가 나왔던 모양인데, 나는 술이 들어갈수록 배만 나왔다. 늘어나는 배만큼 알게 되는 예절도 늘어났다. 윗사람 앞에서는 고개를 돌려서 마시고, 술은 상표가 보이지 않게 따르고, 잔이 비어있을 때는 항상 채워야 한다고 했다.
잔은 채워져가는데, 마음은 비워져 갔다. 스무살의 오늘이 열아홉의 어제보다 별로인 것 같았다. 어른의 가십은 그런 것이었다. 뻔한 선배, 뻔한 얘기, 뻔한 술자리. 누구의 수업은 늦게 끝난다더라. 어제 누구랑 누가 연애하려나 보더라, 너 잔이 비었구나. 그럼 너는 누구와 연애를 할래, 그 때 무엇을 알겠느냐마는, 그 쑥덕거림에서 원하는 건 사랑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재미없다.
대학생활이란 게 너무 시시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오랜만에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만났다. 내가 자판기에서 콜라와 환타를 두고 고민하고 있으면 멋대로 스프라이트를 눌러버리는 친구였다. 문화제가 열리는 광장이었다. 꽤나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삼만 여명과 함께 거리를 걸었다. 한미FTA니 광우병이니, 민주 공화국이니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이 오갔다. 스무살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었던 만큼과 없었던 만큼을 우리는 이야기했다. 자주 가던 통닭집에서 치킨에 콜라를 시켰다. 콜라를 따르는 손은 상표를 가리지 않아도 괜찮았고, 콜라를 마시는 고개는 옆으로 돌리지 않아도 괜찮았고, 비어있다고 해도 따라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술은 한 잔도 걸치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제야,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친구가 물었다.
그래서, 요새 글은 쓰냐.
순간,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친구에게 나는 분명 글을 쓸 거라고, 호기롭게 이야기했었다. 분명 그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있었는데, 술을 마시는 시간이 현저히 늘어난 데 비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은 현저히 줄어들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썼던 다이어리를 펼쳤다. 야자 시간에 썼던 몇 개의 시가 있었다. 그 때의 내가 지금보다 아무래도 나았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별로였다.
예쁜 말들을 담아 재치있게 써보려 했지만 뻔한 글들이었다. 세상에 더 좋은 걸 고민하려 했던 것 같았지만 얕은 글들이었다. 시가 적혀있는 페이지를 모두 찾아 찢어서 버렸다. 서시를 필사했던 첫 장만 남겨두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는, 이미 글러먹었지만.
한동안 다시 시를 써보려 했다. 사랑을 했기에 누군가를 생각하며 썼다. 잎새에 이는 바람이 문장이 되는 때가 있었다. 그대로 썼더니, 나와 그 누군가가 가십거리가 되어있었다.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던 사람과 멀어졌다. 술이 가까워지고 시는 멀어졌다. 뻔한 선배, 뻔한 어른 되기 싫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보통의 값에 수렴해갔다.
시간이 흘러 스물 네 살의 봄쯤이 되었을 때는 내가 그 뻔한 선배가 되어야 했다. 싫었지만, 또 이렇게 지내다 보면 너네도, 언젠가 콜라 한 잔에 잊고 있던 시 같은 걸 찾게 되겠지. 그 때가 되면 또. 술은 맛있으려나. 꽤나 열심히 준비를 마치고, 후배들을 보게 된 첫 날,
훗날, 내가 아끼게 될 후배들의 술잔에는 이미 콜라가 따라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