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키 Oct 18. 2024

너는 잘못이 없어

너는 잘못이 없어

누구나 살다 보면 길을 잃어

나의 아버지도 그랬어

반듯하게 외길 인생을 사셨는데도

길을 잃으셨다니까


나의 마음도 너의 그것과 똑같다 믿었던 날들조차

쭉정이가 진 내 마음은 말이 되지 못한 채 흔들렸어


흐르는 시간 속에 저기 저 네모난 돌담처럼

언젠가 아귀가 맞아지길 소원하며

자꾸만 뾰족해져 가는 마음은

나의 모자람이고 못남이라 자책할 적에

외려 평온이 깃드는 걸 보며

그래, 문제는 나야..

대단한 해답을 찾은 것 같아

나 자신을 기특히 여기기도 했어


꿈에서 깬 어느 날

시간마저 가늠이 안 되는 어둠 안에서

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가 의아해하며

다시 깊이 잠들어야 할지 꿈에서 빠져나와야 할지

알지 못해 망설였더랬지


시계초침의 궤적을 따라 들려오는

균일한 소리의 단호함을 붙잡으려 애쓰며

꿈은 아니구나 생각했어


어둠이 무섭고 싫다가도

이대로 세상이 어둠에 잠긴다면

나는 굳이 일어나 커튼을 걷지 않아도 되겠구나..

아침을 맞지 못한다 해도 아쉬울 거 같지 않았어.


너의 손을 놓으면 나는 길을 잃게 될지도 몰라.

당장 되돌아오고 싶어져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겠지


내 손에 쥐었다 여겼던 것들도 사라져 버릴까

사람들은 나에게서 하자를 찾으려 들고

작은 안도감에 깨어지지 않은 저희들의 일상을 찬미할까


아무렴 어때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냐 묻는 건 의미가 없어

어쩌다 지금까지 이 지경으로 살았는지를 물었어야 해


이불을 끌어다 덮어도 몸이 덜덜 떨려오는 건

시나브로 여름을 밀어내는 서늘함에도 아직 바꾸지 못한 이불의 두께 때문만은 아니야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 방울이 하필 귓속으로 굴러 들었을 때의 생경함

내가 울고 있구나..  

내가 울고 있었구나..


너는 잘못이 없어

살다 보면 누구나 길을 잃어

고백하자면

나는 길을 잃은 게 아니라 길을 찾은 거야


꽃을 가꾸듯 돌보며

한 칸씩 나의 길을 놓았더라면

미로처럼 복잡했을지언정 끝내 길을 찾아냈을까

아마 그랬을 거야

잃었다 생각한 그 길 끝에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척 서있지만

언젠가는 진짜 아무렇지 않게 서 있을 거야


그러니 너의 잘못이란 말로

그 정도 흔들림으로 족하니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그렇게 피었다 지는 꽃으로 살라 말하지는 말아 줘.































작가의 이전글 복자씨의 별사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