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풍경_복자씨 이야기 3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어 창문을 연다.
우박처럼 굵어진 빗방울들이 쏟아지는 구슬처럼 흩어진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었던가..
미술시간에 '비 오는 날'을 주제로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가방을 메고 우산을 받쳐든 친구들의 등굣길..
나는 도무지 빗줄기를, 우산에 가방에 바닥에 부딪혀 통통 뛰어오르는 수없이 많은 빗방울의 움직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끙끙대고 있었다.
그런 내가 한심해 보였던 걸까, 도와주고 싶었던 걸까..
한 친구가- 아마 짝꿍이지 않았을까- "내가 그려줄게!" 하더니 뭐라 대꾸할 틈도 없이 검은색 크레파스로 죽죽 사선을 그어나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파랗게 질려 아무 말도 못 했던 거 같다.
이게 어딜 봐서 빗줄기란 말인가.. 나의 빗방울은 나의 빗줄기는
그렇게 무지막지해서도, 막돼먹어서도 안 되는 거였다.
제 아무리 거친 빗줄기라 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울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기억에 없다.
그 친구가 누구였는지도 기억에 없다. 나는 분노했다기보다 슬폈던 거 같다.
그건 나나 그 아이나 자만심과 무례함에 대한 인식 이전의 일로써 정성껏 쌓아 올린 나의 성을 누군가 짓밟아 뭉개버리기 전에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질책이었고,
지키지 못한 내 그림에 대한 미안함이었으며
생명을 불어넣을 화룡점정의 순간 영원히 용이 될 수 없는 운명이 되어버린 그림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살면서 낭패감이 드는 순간이면 나는 어김없이 비 오는 날의 풍경을 그렸던 '그날'을 마주한다. 이제는 검은 빗줄기만이 선명한 기억으로 남은 그날.. 나는 여전히 빛처럼 반짝이는 빗방울을, 빗방울들이 만들어내는 빗줄기의 청량함을 간절히 기다렸을 나의 그림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