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애는
타인이 말했던 결손가정
우리 엄마는 '아빠 없이 자라서 애가 그 모양'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나는 그 비슷한 칼날에도 베여본 적 없이 성인이 되었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내 시대에는 그런 편향된 문장은 사라졌구나, 이제는 이혼에 대해서도 좀 더 수용되는 사회 분위기니까, 암! 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내 앞에서 대놓고 말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지인의 이야기로부터였다.
여느 때처럼 퇴근을 마친 날, 초·중학생을 가르치는 수학 학원 선생님인 은월 언니가 전화로 고민 상담을 요청해 왔다. 나는 언니가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며 흔쾌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 학원 선생님을 하다 보면 참 어려운 게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이야. 솔직히 쉽게 일하려면, 무서운 선생님이 되면 돼. 영어를 담당하는 학원 원장님은 호랑이 선생님이시거든. 그래서 애들이 다들 어려워해. 나도 알지. 그런데 나는 그렇게 아이들을 대하고 싶지 않아서, 편하게 다가가는 선생님이 되려고 인내심을 갖고 노력해. 요즘 따라 일이 힘든 게, 아이들 중에서도 꼭 반마다 유독 많은 관심을 요하는 아이들이 꼭 있어. 어떤 일이던 자기가 스포트라이트 받길 원하고, 원하는 대로 안 되면 떼를 쓰니까 수업에 지장을 주고...(중략)...내가 정말 이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그 애들을 살펴보면, 전부 조손이라든지, 한부모 가정이야.
그 문장에서 나는 잠시 말문이 턱 막혔다. 내가 바로 그 한부모 가정인데, 언니는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내 지인이 그러한 가정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겠지. 그래, 그게 일반적인 가정 형태니까. 그리고 나의 학창 시절을 순간 되짚어봤다. 사실 나는 반 친구들과 능숙하게 어울리는 방법이 어려워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이였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까지도 반 친구를 하나야-라고 부를지, 김하나-라고 부를지 고민했다. 친하지도 않은 데, 하나라고 친근하게 이름으로만 부르면 상대가 의아해할까 봐, 성씨를 붙여서 이름을 부르면 너무 거리감 드는 느낌일까 봐서 말이다. 어쩌면 그 시절 만났던 선생님들에게도 나는 일반적이지 않아서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존재였을까? 마치 내가 지금 회사에서 진상 고객사에 대해 직원들과 욕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학원에 다닐 때 가족이 누구누구가 있는지 제출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언니가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닌지, 애써 돌려서 물어보았다. 언니 왈, 학생들이 먼저 다 말해준단다. 그리고 은월 언니와 다른 동료 교사도 신경 써주지 않고 있는 건 아니었다. 수업이 끝난 뒤에 따로 해당 학생과 개인 시간을 많이 갖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더 나아지는 바가 없어서 최근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뭐라도 내가 그 학생들 입장에서 대변해 주고 싶었지만, 구구절절 마땅히 직장인 입장에서 고단할 법한 일이었다. 어쩌면 은월언니는 아이들에게 쉽지 않지만, 좋은 영향력을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목표가 있기에, 이러한 고민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고등학교 수학학원 선생님은 아이들의 성적 올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 '때리면서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을 정도니까. 나는 그저 언니가 많이 힘들겠다고 심심한 위로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은월 언니가 지도하기 힘든 학생들의 공통점이라고 조심스럽게 짚은 것이 '가정 형태'였다는 것에, 나는 화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가 즐겨보는 오은영 박사님의 여러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 속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출연자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어떤 가정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부모님은 어떤 분이었는지.' 그 대답 속에서 신기하게도 현재 겪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사람의 가정에서 촉발된 정서까지 주변 사람들이 다 이해해 주고 돌봐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다소 속상한 건, 세상 어느 집집이나 감춰둔 갈등과 문제가 있을 텐데, '결손 가정'=원인이라고 쉽게 판단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기소개서의 성장 과정이란 질문에서도 가장 상투적으로 쓰이는 게 '저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던가! '평범한'이라고 잘 칭해지지 않는 가정에 대해서는 '역시 다르다'라고 인식되기 쉬워지는 것 같다.
가끔 나는 '한부모,편모'라는 이름 자체가 없었다면, 이라는 상상을 한다. 이름을 붙이고 나면, 그 이름에는 이미지가 생긴다. 우리가 빨간색이라는 단어를 보고 파란색을 떠올리지 못하듯이. 이름이 생기면 분류하기가 쉬워진다. 산문에는 수필, 소설이 있고, 희곡에는 연극, 시나리오가 있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미혼인데도 아이를 입양하고, 정자은행을 통해 아이를 낳던데. 어느 가족이나 쉽게 분류되거나, 이미지가 굳어지기 어려운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다. 다만 나는 그 이야기를 오롯이 들으려는 귀를 갖게 되길 바라본다.
※ 은월 언니가 말하는 내용은 제 기억을 기준으로 재구성한 것으로써, 실제와 문장이 완전히 똑같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