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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꽃 Sep 18. 2024

동학년이라는 이름으로

담임교사와 전담교사 

  초등학교는 각 학년이 동(同)학년이라는 이름으로 움직인다. 연구부, 교무부, 과학부, 인성부 등 맡은 업무에 따라 나뉘기도 하지만 그전에 동학년이 있다. 같은 학년을 맡고 교실이 바로바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1년 동안 친밀하게 지낸다. 수업, 행사, 업무 등을 서로 협의하고 함께 운영한다. 회사에서는 같은 부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분위기에서 묘하게 소속감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전담교사’이다. 전담교사는 영어나 과학, 체육 등 수업준비가 많이 필요하거나 수업 시수가 많은 수업을 따로 가르친다. 6학년 영어만 가르친다던가, 3, 4학년 체육만 가르친다던가 하는 식으로 특정 교과만 전담하여 가르치고 담임을 맡지 않는다. 담임을 하다가 전담(이하 ‘전담’)을 할 수도 있고 전담을 하다가 담임을 할 수도 있다. 학교와 개인 사정, 또는 희망에 따라 담임과 전담으로 역할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내가 작년에는 5학년 담임을 맡다가 올해는 영어를 전담하여 전담교사가 될 수 있다. 전담교사는 주로 수업하는 학년에 소속된다. 5학년 영어를 가르치면 5학년 소속이 되고, 3, 4학년 체육을 가르치는데 4학년 수업이 더 많다면 4학년 소속이 된다. 보통 이렇게 운영된다. 가끔 전담교사끼리만 묶어서 하나의 동학년처럼 움직이기도 하는데 보통 전담교사는 수업이 많은 학년에 소속된다. 


  내가 전담을 하면서 느꼈고 다른 전담들도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있다. 바로 소외감이다. 아무래도 학교는 담임교사의 권한이 커서 담임 위주로 움직인다. 학교는 학생이 중심이 되는 곳인데 그 학생이 모인 하나의 반을 담임이 운영하고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전담은 외로움을 느끼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담임과 전담의 역할이 다르다 보니 생기는 간극이다. 교실도 전담은 멀찍이 혼자, 또는 전담끼리 쓴다. 어떤 분들은 소외되는 것이 싫어서 전담을 절대 맡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학교에서 전담은 쩌리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사실 어느 학교에서든 전담을 ‘쩌리’(자투리)로 대우하는 경향이 있다.


  빛과 어둠은 항상 공존하듯 이 외로움과 희미한 존재감 때문에 오히려 전담을 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분들은 차라리 나를 소외시켜 달라고, 혼자 있는 게 편하다고 한다. 전담은 외롭지만 대신 자유롭다. 외로움을 충분히 감당하며 즐길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나도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해서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도저도 아닌 것이, 혼자 있고 싶지만 안 챙겨주면 서운하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어느 책 제목처럼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로운 것은 싫다.


  10년 전쯤, 영어전담을 3년 동안 맡았었다. 영어심화연수를 6개월 받았는데 그 연수를 받으면 영어전담을 3년 동안 맡아야 하는 권고사항이 있었다. 그렇게 전담교사를 3년 동안 하면서 전담이 느끼는 서운함과 소외감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여름방학이 끝날 때쯤 2학기 수업준비와 업무를 위해 출근했다. 개학 전에 출근할 때는 급식이 제공되지 않으므로 점심을 사 먹어야 한다. 전담인 나에게는 묻지도 않고 동학년끼리만 시켜 먹을 때는 조금 서운했다. 같이 먹지는 않더라도 한 번 물어봐주지. 그때는 내가 6개월 휴직 후 막 복직했던 때라 친하지도 않은 전담교사와 밥 먹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겠거니 이해가 됐다. 나 역시 밥 먹는 것이 귀찮으니 서운하지만 쿨 한 척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쿨 하게 넘어가기에는 어이없고 언짢아서 지금까지 또렷이 기억하는 일화가 있다.   


  학교 전체 회식 때였다. 장소는 신발을 벗고 앉는 고깃집이었다. 동학년은 함께 이동하고 회식장소에서도 당당히 자리를 잡는다. 자리에 앉아서도 화기애애하게 웃고 얘기를 나눈다. 우리 학년은 이렇게 사이가 좋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큰 소리로 웃고 말하는 학년도 종종 있다. 함께 움직이지 않아도 동학년 중 한 사람이 먼저 와서 아무 데나 앉고 이렇게 말하면 된다. “여기 4학년 앉을 거예요.”하면 다들 ‘그렇군’하면서 다른 자리를 찾는다. 나는 그날 혼자 좀 일찍 왔다. 자리가 거의 비어있었다. ‘어디 앉지?’ 잠시 고민했다. 그날 나는 동학년에게 특별한 연락을 받지 않았다. 어떤 전담선생님은 동학년으로 가서 함께 이동했고 어떤 전담선생님은 나처럼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냥 아무 데나 앉자’ 하고 나름대로 모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한 선생님이 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여기 우리 학년 자린데…….” “……?” 분명 그 자리는 비어있었다! 내가 앉은 그 자리는 가방 같은 물건으로 영역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뭉그적거리자 “우리 학년이 앉으려고 했는데……어디 앉지?”라고 말하며 그 선생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니까 그 선생님은 내가 먼저 앉은 그 자리를 ‘우리 학년’이 앉기에 딱 좋아 보여 '눈으로' 찜해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쩌리’가 먼저 와서 앉아 있으니 이 자리는 우리 자리라고 말한 것이다. 황당했다. 잠시 고민했다. 철판 깔고 ‘어쩌라고’하면서 계속 앉아 있어야 하나? 나는 결국 알아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어슬렁거리다 동학년과 비교과교사(상담교사, 보건교사, 영양교사), 전담교사들이 자리를 잡을 때쯤 그쪽에 슬며시 앉았다. 나는 동학년이라는 그룹에 사교성 있게 먼저 다가가지도 못했다. 전담에게 특별히 연락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움직이는데 굳이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쫓겨나는 내 신세가 서러웠다.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 돌이켜보았다. 혹시 나도 저러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그룹을 만들고 그 단체의 결속을 다지기를 좋아한다. 누구나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그룹에 속하지 않은 사람을 배제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는 한 학교 직원이고 같은 교사인데 거기에서조차 다시 또 그룹을 지어 자기 단체에 속하지 않은 사람을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나는 당시 전담이었지만 회식자리에서 나에게 비키라고 눈치를 준 그 선생님과 다음 해에 동학년이 될 수도 있다. 그 선생님이 전담이 될 수도 있고, 그 선생님과 친한 교사가 전담이 될 수도 있다. 이런저런 가정을 하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서 꼭 동학년이 아니라고 선을 그어야 했을까? 그냥 같이 앉으면 안 되었을까? 아니면 옆에 앉는 것도 싫을 만큼 나를 안 좋아했나?(상식적이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내가 직장에서 그렇게까지 누가 싫어할 사람은 아니고 예의 없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무리를 짓다 보면 다른 무리를 배척하게 된다. 피부색, 인종, 출신 나라는 물론이고 같은 지역, 같은 동네, 같은 학교, 같은 아파트로도 무리를 짓는다. 그리고 거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을 소외시킨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무리 지어 다니며 세를 과시하고 누군가를 외톨이처럼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다. 더구나 같은 학교 선생님들끼리 말이다. 교사라면 최소한 그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타인에게 열린 태도를 갖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리에 섞여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지만 이렇게 촘촘하게 떼 지어 다닐 필요까지는 없다. 앉을 곳이 없어서 혼자 있는 전담 옆에 앉고, 동학년이 그 옆에 함께 앉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상대가 병을 옮기거나 나에게 신체적, 정신적 해를 입히지 않는다면 상대를 포용하는 것이 나에게도 이롭다.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상대와 같은 입장에 처할지도 모르니까. 언제든 입장이 바뀔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뭐 대단히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무리에 섞여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다른 사람을 소외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용히 자발적으로 외톨이가 되는 편을 택하겠다. 더 나아가 내가 비록 '인싸' 보다는 '아싸'에 가깝지만 무리 밖에 있거나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사람이 있거나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이 보인다면 모른 척하고 싶지 않다. 먼저 다가가 뽀로로 비타민이라도 하나 건네면서 먼저 말을 걸어줄 것이다. 그나저나 그때 나를 다른 자리로 보냈던 그 선생님은 그날 고기는 맛있게 잡수셨는지, 그 뒤로 전담은 맡지 않으셨는지, 새로운 학교로 옮겨서 잘 적응하셨는지 가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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