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남기지 않는 걸로
매끄럽게 껍질을 깐 노란 키위와 한 공기쯤 되어 보이는 쇠고기깍두기볶음밥이 식판 한쪽에 모인다. 식판 국그릇 쪽에 퍼준 모양 그대로 샐러드, 김치, 조금 먹고 남긴 떡갈비가 섞여 잔반통에 버려진다. 커다란 잔반통에 먹고 남긴 음식물이 쌓여있다. 깊이 1m 정도의 잔반통이 거의 다 찼다. 학생과 교직원의 점심시간이 끝나면 급식실 조리사님과 실무사님들이 급식실을 청소하고 잔반을 나르고 버린다. 그들은 묵직한 잔반통을 힘껏 밀어 나른다. 지나가다 나도 몇 번 같이 나른 적이 있는데 잔반통을 미는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버려지는 음식을 보면 아까운 마음에 어쩔 줄을 모르겠다. 아깝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미안함, 죄책감까지 느껴진다. 약간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뭐든 아끼는 나의 습관이자 천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음식은 다른 물건이나 소비재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만드는 데에는 조금 더 특별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 같다. 무엇을 만들까 고민하여 계획을 세우고, 재료를 산다. 재료를 씻고 다듬고 정리한다. 무거운 냄비를 한가득 채워 끓이고, 타지 않게 불 앞에 서서 저어가며 볶고, 뜨거운 기름 앞에서 튀기고, 흘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릇에 담아내어 준다. 그 결과물은 사람의 입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간다.
음식 만드는 일은 상당 부분 사람이 하나하나 손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에서 사람에게 바로 전달된다. 파를 잘게 썰고, 당근을 채 썰고, 눈물을 흘리며 양파를 까서 모양에 맞춰 칼질을 한다. 그 작은 과정에 정성이 들어간다. 그래서 작은 깨 하나, 작은 무 조각 하나도 남김없이 먹고 싶다. 영양교사와 급식실 조리사님들이 급여를 받고 직업적으로 음식을 만든다 해도 음식에는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과 정성이 자연스럽게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한 번쯤 학교 점심 급식 후 나오는 잔반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잔반이 정말로 너무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당일 점심급식 이후 나오는 잔반의 양은 상당하다. 이삿짐센터에서 포장할 때 쓰는 초록색 박스 부피의 잔반통에 잔반이 가득 담긴다. 그런 통이 여러 개 나온다. 각 학교의 학생과 직원 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든 적지 않은 양의 잔반이 나온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음식을 가차 없이 버린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밥과 반찬을 조금 먹고 많이 버린다. 고학년 아이들은 얼른 밥을 먹고 밖에 나가 놀고 싶어 대충 먹고 휙 버리기도 한다. 저학년 아이들은 먹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 식사 시간을 맞추지 못하기도 하고 맛이 없어서 못 먹겠다고 한다. 사람 입맛은 각자 다르니 이해해보려고 하지만 점심 급식이 맛없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도대체 집에서 얼마나 맛있는 것을 먹는지 궁금하다.
채소가 들어간 샐러드는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집에서 샐러드를 만들려면 재료구입부터 손질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각종 채소를 사서 다듬고, 씻고, 물기 제거하고, 자르고, 손이 많이 간다. 샐러드에 채소만 들어가지 않는다. 올리브, 치즈, 견과류, 달걀이나 메추리알도 들어간다. 샐러드드레싱도 있어야 한다. 재료 하나하나 사려면 돈도 많이 든다. 그 맛있고 비싸고 공들인 음식을 버리다니……. 멀쩡한 방울토마토, 반짝이는 샤인머스켓을 버리는 경우도 자주 보았다. 3개 준 꿀떡을 1개만 먹고 버릴 때는 안타까워하며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다.
아이들에게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으라고 할 수는 없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못 먹을 수도 있다. 몸이 안 좋은데 표현도 못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먹일 수도 없다. 먹기 싫은 거 억지로 먹였다고 민원이 들어올 수도 있다. 나 역시 많이 먹으라고 계속 권하고 싶지 않다. 누가 나에게 먹고 싶지 않을 때 자꾸 먹으라고 권하면 고맙지만 사양하고 싶다.
그러면 처음부터 “김치는 조금만 주세요.”, “제육볶음은 안 먹습니다.”라고 말하면 안 될까? 아이들의 경우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럽고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급식 지도 겸 연설을 늘어놓는다. 먹기 싫은 것을 조금만 달라고 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잔반도 줄이고 얼마나 좋으냐, 학교 점심을 무상으로 먹는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여러분 부모님이 매일 힘들게 버신 돈을 지역과 나라에서 세금으로 떼어간다, 학교는 부모님이 낸 세금을 다시 받아 우리가 먹을 밥을 만드는 데 쓴다, 우리가 그렇게 밥을 먹는 것이다, 공짜가 아니란 말이다! 심지어 그 세금의 액수가 적지 않다, 공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 먹어야 한다, 여러분은 성장하는 어린이이기 때문에 많이 먹어야 몸이 크고 머리도 좋아지고 활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생긴다, 게다가 남은 음식은 다 환경오염이다, 심지어 지구 어느 곳에서는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도 있다, 여러분 같은 아이들이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지저분한 플라스틱 통을 들고 몸싸움을 한다, 먹을 것을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니 남기지 마세요.
이렇게 열변을 토한다. 한 아이가 먹고 있던 식판을 담임교사에게 가져와 나물 반찬을 가리키며 묻는다. “이거 안 먹고 싶은데 꼭 먹어야 돼요?” 그러면 나는 나물은 몸에 좋다, 먹기 싫어도 한 번 먹어봐라, 의외로 맛있을 거라며 호들갑을 떨며 말한다. “일단 한 번 잡숴보세요.” 집에서도 이렇게 식사를 차리는 것은 힘들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도 학교에서 주는 밥은 꼭 다 먹고 특히 고기는 남기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한다. 내가 집에서 고기반찬을 잘 안 주기 때문이다. 집에서 내가 학교 점심 급식 수준으로 식사를 차려줄 자신이 없다.
안타깝고도 놀라운 것은 선생님들도 밥을 많이 남기고 역시 가차 없이 버린다는 것이다. 조리사님들이 선생님들한테는 밥과 반찬을 많이 주는 편이다. 성인이니까 아이들 주는 것에 비해 많이 주기도 하고 고생한다고 많이 주기도 하신다. 수북하게 담아 온 생선튀김과 보쌈김치를 반절 정도 먹고 버린다. 아니 저 아까운 것을! 선생님들의 경우, 아이들이랑 정신없이 먹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조금 먹고 버리는 경우도 있다. 특히 저학년 담임교사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처음부터 조금만 받으면 된다. 조금만 달라고 하면 조리사님들이 적당히 주시는데 아무 말도 안 하면 많이 담아 주신다. 내가 매의 눈으로 관찰해 보니 밥을 주시는 데로 받아서 조금만 먹고 버리는 분들이 많았다. 조금만 달라고 해서 다 먹고 안 버리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걸까? 게다가 선생님들은 돈 내고 드시는 데 아깝지 않나요?
카페나 음식점에 가서도 절반 정도밖에 먹지 않은 음식이 버려진 것을 자주 본다. 심지어 거의 손도 안 댄듯한 만두, 케이크도 보았다. 이럴 땐 ‘내가 좀 먹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 잠깐 동안 버려진 음식을 바라본다. 음식 남기는 것은 싫지만 이래 봬도 위생은 철저해서 남의 입이 닿은 음식은 먹지 않는다. 그러니 다행히도 ‘저거 제가 먹어도 될까요?’ 같은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는다. 내가 강박적으로 위생을 챙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짠순이 기질이 발동하여 남들이 보기에 ‘없어’ 보이는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서너 명의 지인들과 식사를 하는데 나 빼고 모두 돈가스를 한 두 조각만 먹고 나머지를 버렸다. 자신이 먹던 것이고 거의 손도 대지 않은 깨끗한 것이라 남은 음식을 싸 갈 줄 알았는데 그냥 테이블 위에 두고 일어났다. 사람들은 의외로 적게 먹고 많이 버린다. 그러면 돈이 너무 아깝지 않나. 상대의 경제 상황까지 내가 간섭할 수 없고 억지로 먹게 할 수도 없으니 나는 그저 혼자 버려진 음식을 아까워한다. 사실은 남겨진 대여섯 조각의 돈가스를 보며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저거 내가 싸갈까? 유용한 반찬이 될 텐데, 아깝다. 집에 가서 먹으면 더 맛있는데……’ 가끔은 상대방에게 남은 음식을 포장해 집에 가서 드시라고 조심스레 권하기도 한다. 남은 음식을 싸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뭘 그런 걸 싸 가냐고 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눈치를 봐가며 권하거나 조용히 입을 다문다. 집에 와서까지 내내 남겨진 음식이 생각날 때도 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다. 돈가스를 먹기 위해 지불한 돈이 아깝지 않냐고. 버려지는 돈가스가 아깝지 않냐고. 저렇게 버려지면 다 쓰레기가 될 텐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주변 사람들과 학생들이 음식을 남기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에둘러 물어도 보고 관찰도 해보았다. 역시 가장 큰 원인은 언제 어디서든 먹을 것, 누릴 것이 풍족하기 때문인 듯하다. 집에도 얼마든지 맛있는 음식이 있고 얼마든지 편의점에 들어가 간편하게 사 먹을 수 있는데 학교 급식이 대수겠나. 먹는 것뿐 아니라 대체로 생활 전반에 부족함이 없다.
물건도 쉽게 사고 쉽게 버린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단순히 오래돼서 기능상 문제가 없는데도 새 물건으로 바꾼다. 멀쩡한 스마트폰을 2년에 한 번씩 바꾸는 사람이 많다는 말을 듣고 나는 사실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왜요……? 스마트폰은 일단 5년 기본으로 쓰고 고장 날 때까지 사용하는 거 아닌가요?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습성으로 인해 주어진 음식을 다 먹고, 물건을 끝까지 사용하는 것에 유의하지 않는다. 버리는 것에 익숙하다.
나는 연필이나 지우개를 거의 사지 않는다. 교실에 굴러다니는 연필과 지우개를 주어서 쓰면 평생 쓸 수 있을 정도다. 이거 주인 누구냐고 몇 번이나 묻고 분실함에 넣어도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다.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전에 부모가 먼저 필요할 것이라 예상되는 것들을 가져다준다. 수요보다 공급이 훨씬 많기 때문에 수요자 입장에서는 아쉬울 것이 없다.
인간이 성장하는 데 결핍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시작하고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간절함이 필요하고 그 간절함은 결핍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결핍이 생겨나지 못하니 무엇을 하고 싶다거나, 먹고 싶다거나, 원하는 것이 없는 것 아닐까. 결핍과 간절함은 인간의 나약한 의지에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힘을 준다.
먹을 만큼만 받아서 다 먹으면 잔반 버리지 않아서 편하고 참 좋은데 이걸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나라도 우리 반에서 ‘밥 다 먹기 운동’을 하는 수밖에. 한 아이가 콩나물이 살아있는 쫄면무침을 잔반통에 버린다. 나는 가슴을 졸이며 바라본다. ‘님아, 그 쫄면무침을 제발 버리지 마오.’라고 속으로 또 애를 태운다. 하지만 애태우는 것만 하지 않고 담임교사인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연설(이자 잔소리)을 지속적으로 할 것이다. 학교 급식은 영양설계가 잘 되어 있고 부모님의 세금으로 먹는 것이며 버려지는 음식은 다 쓰레기가 되고 지구 어느 곳에서는 여러분과 같은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쓰러지고 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