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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꽃 Sep 06. 2024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재밌게 읽었지만 경이로운 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의 제목은 여러 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주변에서 들은 바에 따르면 꽤 난해한 내용이지만 끝까지 읽으면 왜 그런 이야기를 이끌어 왔는지 이해하게 된다고 했다. 중반 이후까지 그래서 뭐 어떻다는 말인가, 그래서 지금 이 얘기를 왜 하는가, 이 얘기했다 저 얘기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끝까지 읽는다면 마지막에 가서 딱 알게 된다고 했다. 


  저번 주에 김겨울 작가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생겼다. 인기 있는 작가이자 유튜버라서 이미 다 자리가 찼겠지만 신청 버튼이나 눌러보자는 마음으로 클릭. 신청이 되었다. 그것도 강연 바로 전날 오후에. 어... 나 사실 김겨울 작가 잘 모르는데...... 막상 신청이 되니까 가기 귀찮아졌다. 9시 30분에 끝난다는데 언제 집에 가서 씻고 자나. 아, 아니야. 공식적인 명분을 가지고 집에 늦게 들어가도 되잖아! 집에 가서 청소하고 밥 하는 대신 학교에서 일하다가 근처 스타벅스에 들러 샌드위치를 사 먹고 강연 들으러 가자! 그러면 되겠네! 나의 생각의 흐름은 이렇게 이어졌다. 역시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그때부터 김겨울 작가의 유튜브 채널에 가서 재밌어 보이는 영상을 몽땅 오프라인 저장해 놓았다. 운동하면서 듣고 청소할 때도 듣고 밥 하면서도 듣고 다음날 강연장에 걸어가면서도 듣고 스타벅스에서 샌드위치 먹으면서도 들었다. 그중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을 소개하는 영상이 있었다. '이 책을 추천하면서도 나는(김겨울 작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냥 봐~ 아무것도 찾아보지 마~그냥 봐야 좋아~일단 한 번 읽어봐~꼭 끝까지 읽어봐~'라고 책을 소개했다. 이 책의 앞쪽에 책에 대한 찬사가 여러 장 적혀 있는데 김겨울 작가는 너무 이렇게 좋다 좋다 하는 책은 '그래 얼마나 좋은가 보자'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나 역시 그랬다. 아니 도대체 뭐 얼마나 좋길래 다들 경이롭다는 거지? 김겨울 작가는 약간의 의심을 품었으나 다 읽고 나서는 역시 경이로웠다고 했다. 이 책이 올해의 책이 될 것 같고 주변에 역시 그런 사람을 많이 봤다고 했다. 책 영업을 무척 잘하셔서 결국 나도 읽게 되었다. 도대체 얼마나 좋길래?


  나는 범인이 누구인가 추리하거나 마지막 반전이 있는 소설과 영화를 좋아한다. 이 책에도 그런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뭐가 있는지 너무 궁금해서 그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고 끝까지 읽었다. 얼른 뒷부분으로 가고 싶어서 중반까지 그렇게 지루하지 않게 읽었다. 이것이 다 밑밥이 되겠구나. 밑밥을 잘 읽어놔야 나중에 반전을 제대로 즐길 수 있기에  과연 어떤 반전이 나올지 기대하며 차근차근 읽어갔다.


  저자는 어린 시절 자살 시도를 할 만큼 혼돈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곱슬머리 남자가 그녀의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그런데 저자는 한 소녀와 한 번의 외도(?)를 하게 되고 그 일로 곱슬머리 남자와 헤어지게 된다. 책에서는 그 외도의 장면을 시적이고 낭만적인 문장으로 표현했던데 나는 부끄럽지만 간단하게 외도라 표현하겠다. 다시 혼돈에 빠진 저자는 자신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줄 만한 사람을 찾게 되고 한 인물에 빠지게 된다. 스탠퍼드의 초대 학장이자 설립자 중에 한 명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 책의 처음부터 중반까지 상당 부분이 이 사람의 전기처럼 펼쳐진다. 불굴의 의지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결과를 만들어 낸 사람, 수많은 어류를 찾아내고 분류하여 업적을 쌓고 세상이 알아주는 명예와 부를 쌓았다. 그는 수많은 난관을 이겨냈고 그 과정에서 그는 철저하게 단단하고 자존감 높은 학자였다. 하지만 그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는 자기기만과 자만심에 빠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우생학의 철저한 신봉자이자 전파자였다. 우생학은 '부적합'자들을 찾아내어 격리하고 강제로 불임수술을 시킨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또다시 혼돈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 혼돈은 깨달음을 위한 과정이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남들이 맞다고 하는 것이 정말 맞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 자신이 그토록 우러러보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우러러볼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우생학을 신봉하며 평생 어류를 찾고 분류하며 살았다. 그러나 우생학은 이제 과학계에서 폐기된 이론이다. 그에 더해 분기학이라는 학문에서 어류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양서류, 설치류, 포유류는 존재하지만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 분기학적으로 폐어(lungfish), 연어, 소를 볼 때 폐어와 소가 더 가까운 계통이라고 한다. 폐어(lungfish)와 소는 분기학이라는 학문적 관점에서 그렇게 분류되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렵지만 이미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폐어와 연어가 바다생물이므로 같은 종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 단순하고 임의적인 분류체계를 흔든다. 이 내용을 캐럴 계숙 윤이라는 작가는 <자연에 이름 붙이기 Naming Nature>라는 책에서 자세히 언급한다.  과학계에서는 이미 어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분류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믿어왔던 어류의 체계와 우생학이라는 것은 허상이라는 것이고 이는 다시 이 책이 주는 메시지와 연결된다. 우리가 현재 믿고 지키는 질서와 범주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저자 자신이 우러르고 존경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모순적인 우생학자였고 그가 연구했던 어류는 이제 과학계에서 어류라는 분류로 존재하지 않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신봉했던 우생학이라는 것도 이미 폐기되어 버린 미신 같은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체계와 질서는 사실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것이 옳다고 의심 없이 믿는 것, 자신을 그 체계에 맡겨버리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음을, 내가 믿는 것이 진실이나 실체가 아닐 수 있음을 저자는 전하고자 한다. 


  저자는 자신이 사랑하고 집착했던 남자와 헤어지고 새로운 여자를 만나게 된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남자일 거라 생각했지만 자신보다 어리고 작은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세상의 질서나, 특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신념에 따르자면 '부적합'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 모든 틀과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 이렇게 저자는 실제 자신의 일상에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실행하며 살고 있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강렬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가슴과 머리로 잘 전해진다.  매우 재밌게 읽었고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 탁월했다. 그러나 약간 아쉬운 것이 있다면 식스센스급 반전을 예상했는데 그만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분명 반전이 있을 거라 예상했고 그 반전이 쓰나미급일 거라 기대했는데 조금 약했다고 할까. 세상이 뒤집히는 반전까지는 아닌 것 같아 '혼돈'에 잠시 빠졌다. 


  그래서 이동진, 김겨울의 리뷰를 찾아보았다. 모두 이 책에 대해 극찬했다. 그래, 좋은 책이야. 그런데 내가 너무 기대를 했구나. 기대를 조금 낮췄다면 아마 나도 올해의 책이라고 했을지 모른다. 요즘은 많은 책에서 너무 강하게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톤이 너무 세다. 예를 들면 '틀을 깨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 '새로운 것을 추구해라' 하고 외치는 소리가 혼내는 것 같아 주눅이 들기도 하고, '네네 알겠습니다~'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부적합'할 수 있는 면을 훤히 드러내며 솔직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나의 큰 기대로 반전의 세기가 다소 약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뻔하지 않은 전개와 저자의 진솔한 고백이 정말 좋았다. 


  나도 저자처럼 내 삶에 세상이 정한 체계와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을 적용해 보자면, 아마도 '비교하지 않기', '나 자신으로 살기' 같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말은 쉬운데 참 어렵다. 요즘 '강앤박변호소'라는 유튜브를 즐겨 듣는데 그 채널 진행자인 14년 차 파트너 변호사가 세전인지 세후인지 1년에 8억을 가져간다고 들었다. 나이도 나보다 한 두 살 어리던데 내 수입과는 비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돈을 버는 것을 보고 나는 뭔가 하는 생각이 들며 스스로 초라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음... 저자는 시적인 표현과 극적인 서사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데 나는 유튜브 보고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수입이 적은 것을 한탄하는 것이 조금 부끄럽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현실인 것을. 이 책의 주제를 살려 다시 말해보자면, 갖다 붙이기 같지만,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모습대로 사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저자의 문장과 전개방식에 비해 너무 밋밋한 문장과 뻔한 독후감 결말인 것 같아 또 한 번 부끄럽지만...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내 모습대로 사는 것을 실천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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